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Nov 26. 2022

나는 우리 조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제도 개편 준비 과정 회고

제도 개편을 준비하면서 여러 단계의 구성원 의견 청취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사원 대상 설문조사, 100명 정도의 분야별 FGI, 며칠 전에 있었던 공개 토론회까지. 설문은 조직문화 진단을 하면서 해봤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하는 FGI는 처음이었다. 공개 토론회는 회사 역사상 처음 하는 시도였고. 느낀 점이 많아서 회고 차원에서 정리해 보자면.


1. 나는 우리 조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본사에서 근무하지만 사무 인력은 우리 조직의 1/3 정도밖에 안된다. 나머지 1/3은 영업, 제조 인력이다. 예전에 신입 때 잠깐 영업에서 일한 적이 있지만 사실상 회사 생활의 대부분을 본사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본사와 사무 직원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FGI를 하며 제조, 영업을 가보니 환경과 문화가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제조, 그러니까 공장은 안전에 민감하고, 도제식으로 교육을 하고, 아버지와 아들 뻘 직원이 같은 장소에 근무하는 환경이다. 이곳의 문화는 사무직들이 주로 근무하는 본사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조직에서는 '수평적인 문화'라는 키워드에 대한 반감이 타 조직보다 굉장히 심했다.  자신들이 일하는 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 반감의 주된 이유였다.


FGI를 하고 나서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좀 더 올라갔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조직에 대해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나의 얄팍한 이해도를 가지고 조직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었다. 다시 좀  많이 겸손해졌다.


2. Why는 정말 정말 중요하다


이번에 제도 개편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 들었던 질문은 "근데 그거 왜 바꿔요?", "그냥 지금 그대로 하면 안 돼요?"였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 지금 이렇게 회사가 변하고 있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당연히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어떤 사람에게는 '그건 네 생각이고'였다. 조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맞지만 변화의 강도는 조직마다 달랐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정도도 당연히 자신이 속한 조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HR 쪽 일은 엑셀에 수식 넣으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일이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어떤 사람에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된다. 조직 내에 다양한 사업 영역이 있고, 연령대가 다양하고,  역사가 오래된 조직일수록 그 간극이 더 크다.


이런 상황을 뚫고 지나가려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대의명분'이 필요하다. 실행 방법에 있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더라도 최소한 이 일을 하는 이유(Why)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어야 한다. 영화 대부의 명대사처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 한다.  


초반에는 팀 안에서도 why가 단단하지 않았고 그래서 FGI 과정에서 곤란한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그 덕에 팀에서 토론을 계속했고 why를 처음보다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오늘부터 조직문화 담당자>를 쓸 때 유민님이 Why의 중요성을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머리로만 이해했는데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말 뜻을 좀 더 깊게 이해했다. 역시 일은 발로 뛰며 두드려 맞으며(?) 배워야 제 맛이다.


3. 결론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이번에 제도 개편을 준비하면서 신경 쓰고 있는 건 '과정'이다. 옛날이었다면 일방적으로 HR에서 정해서 뿌리는 방식이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수용성이 떨어진다. 정식으로 제도 개편을 발표하기 전에 그걸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변화관리의 시작이다, 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제도 개편을 놓고 처음으로 토론회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들으려는 창구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블라인드에 공개적으로 토론회 하는 게 신선했다는 반응이 올라오는 걸 보니(보통은 욕만 올라오는데) 소기의 성과는 있었던 거 아닌가 싶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대로 잘 진행되면 바텀업 방식으로 제도 개편을 한 첫 번째 사례로 기억되지 않을까.   


4.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임팩트 <<<< 팀이 만들 수 있는 임팩트  


이번 프로젝트는 3명이 한 팀으로 일을 하는데 합이 좋다. 팀장 역할을 하는 선배가 큰 판을 짜면 나머지 2명의 팀원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토론회를 꽤 큰 규모로 했는데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팀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을 하며 좋은 팀의 조건은 뭘까, 종종 생각했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팀원 각자의 강점을 충분히 발휘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체적으로 일을 할 때 '뭔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함께 일할 때 더 재밌고, 만들어낼 수 있는 임팩트도 훨씬 크다.


개인적으로는 팀으로 일을 할 때 스파크가 튀는 순간을 좋아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티키타카가 되면서 아이디어가 디벨롭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런 순간이 몇 번 찾아왔다. 좋은 팀과 일을 하는 행운이 찾아와서 요즘은 즐겁게 일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와 경쟁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