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뉴질랜드 출신의 경제학자 필립스는 영국의 과거 자료에서 실업률과 임금 상승률의 관계를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과거 데이터는 실업률이 높은 해의 임금의 상승률이 낮고, 반대로 실업률이 낮은 해의 임금 상승률이 높은 모습을 보였다. 직관적으로 실업률이 높아 구직자들이 일을 쉽게 구하지 못한다면 (노동 시장이 느슨하다고 표현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압력이 낮아질 것이고 실업률이 낮아 일하려는 사람들을 구하기 힘들어질수록 (노동 시장이 tight 하다고 표현한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압력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업률과 임금의 상승률이 반비례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우리는 경제학자 필립스의 이름을 따서 '필립스 곡선'이라고 부른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른다면 물건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승하게 되고 물건들의 가격 또한 올라가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이것은 실업률이 높다면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실업률이 낮다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률이 높을 때는 임금의 상승이 적고 비용이 적게 상승하기 때문에 물건들의 가격이 조금만 오르기 때문이다. (처음의 필립스 커브는 실업률과 임금 상승률을 비교했지만 오늘날에는 인플레이션-실업률 필립스 커브와 임금 상승률-실업률 필립스 커브를 둘 다 사용한다)
Phillips Curve (출처:wikipedia)
대공황 이후 케인즈의 이론을 따르는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물가 상승률과 실업률 사이의 반비례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통해 실업률의 고통과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적당히 저울질해가면서 이 사이에서 가장 유익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60~70년대가 들어오게 되면서 도전에 직면한다.
미국은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엄청나게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이 시기를 대 인플레이션 시대 (Great Inflation)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였다. 어째서 이렇게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야기는 존 F 캐네디 대통령의 당선 당시로 돌아간다.
불황에 빠진 미국의 경제를 부양하겠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캐네디는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하게 된다. 소비가 늘어난 미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용되면서 실업률이 낮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 사회의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게 된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 낮은 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점점 더 높아졌던 것이다.
이유는 기대 인플레이션 (inflation expectation)에 있었다. 훗날 노벨상을 수여한 밀턴 프리드먼과 에드먼드 펠프스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예상하는 기대치가 높아진다면 실업률과는 관계없이 인플레이션 자체가 높아져 고착화될 수 있다는 이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이 3%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월급이 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3% 올려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기업가들 또한 물가가 3%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월급을 3% 올려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임금이 3% 상승하는 대신 판매하는 물건들의 가격을 3% 더 인상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실업률이 낮아진 것도 아니지만 물가가 3% 상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약 사람들이 예상하는 인플레이션의 수준이 달라진다면 과거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관계가 고정된 필립스 커브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된다.
출처: ebrary.net
만약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게 된다면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게 된다. 혹은 경기 부양 정책으로 낮아진 실업률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그대로지 않고 더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캐네디 행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실업률이 낮아지고 호황을 겪은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과거보다 높아졌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앞으로도 전보다 인플레이션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앞에서 말한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은 과거보다 더욱 높아졌고 계속된 낮은 실업률에 인플레이션은 계속 높아져 갔으며 사람들이 예상하는 인플레이션 또한 계속 높아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베트남 전쟁으로 정부의 지출이 더욱 늘어나자 이 인플레이션은 자꾸 높아지게 되었다.
확장적인 재정의 지출은 캐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존슨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 포드 대통령에까지 이어졌고 이렇게 높아진 인플레이션은 70년 대에 들어서자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극심하게 높아진 데에는 부족한 경제학 이론과 확장적인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Fed)의 늦장 대응에도 책임이 있었다.
통화량을 조정해서 (이를 통해 이자율을 조정해서) 정책을 펼치는 중앙은행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될 경우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 (= 이자율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넘쳐나는 수요를 잠재운다. 하지만 통화량을 줄여 경제를 식히는 (때로는 침체에도 밀어 넣는) 정책은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현재의 상황만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정치권으로부터 법적,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는다(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과정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기회가 된다면 다루겠다). 하지만 닉슨 행정부로부터 임명받은 아서 번(Arthur Burn) Fed 의장은 행정부의 눈치를 보았고 시기적절한 통화정책을 시행하지 못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량을 줄여 금리를 상승시켰지만 경기가 침체될 조짐이 보이자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고 이러한 일들을 계속 반복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자꾸만 높아졌고 기대 인플레이션 또한 자꾸 높아지게 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요동치게 되었다.
거의 20년간 지속되었던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그다음으로 임명된 Fed의 의장 폴 볼커(Paul Volcker)였다.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임무를 가지고 카터 행정부에서 임명된 볼커는 취임 이후 화폐량을 급격히 줄이는 정책을 시행한다.
80년대 초 볼커 당시 Fed의 금리(빨간색)
급격하게 통화량을 감소시키자 미국에서는 불황이 찾아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볼커 의장은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지자 기대인플레이션이 점점 낮아지게 되었고 2~3년 내에 인플레이션은 기존의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졌기 때문에 불황이 계속되지 않았고 실업률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때 겪은 불황이 카터 대통령의 중간선거 패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오늘은 거시경제학에서 정말로 중요한 기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정말 중요한데,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어 사람들이 예상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변하게 된다면 경제 상황과 관련 없이 인플레이션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