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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코믹 Oct 02. 2022

새로운 통화정책, 양적완화 이야기

통화정책의 탄약이 떨어졌다

오늘은 지난번 미루어 두었던 양적완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 https://brunch.co.kr/@easycomic/19>

최근 통화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미국의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에 관한 뉴스도 많이 나오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들이 많이 오가는 것 같다. (통화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링크의 글을 읽어보기를 추천드린다)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정책이 등장했지만 막상 양적완화가 어떤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을 느낀다.

미국의 중앙은행 Fed에서도 일반적인 사람들도 정책을 이해하도록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여러 중앙은행의 정책가들은 사람들이 통화정책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씁쓸하게 느낀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최근 새로 등장한 많은 정책들이 있지만 그중 양적완화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려 설명하려 한다. 우선 전통적으로 통화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데 이자를 주고받는다. 이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과 빌려주려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이자율이 결정된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빌려주는 것과 단기적으로 빌려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며 당연히 돈을 빌리는 기간에 따라 이자율이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며 이자율이 결정되고 거래를 하는 시장에서 중앙은행이라는 기관은 간접적으로 이 이자율에 영향을 준다. 물론 5년 10년 빌릴 때 거래되는 이자율을 조정하는 것보다 짧은 기간 거래하는 이자율을 조종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조금만 교란시킬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이 단기 이자율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다. 중앙은행은 시중 은행들 간 하루 동안 거래할 때 적용되는 Federal Funds Rate라는 초단기 금리를 통화량을 조절해 가면서 조종한다 (링크 글 참고). 이렇게 결정되는 단기 금리는 간접적으로 그 보다 긴 장기금리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빌리는 이자율이 낮아진다면 돈을 일 년 동안 빌리는 사람들은 일 년 돈을 빌리지 않고 한 달씩 나누어서 돈을 빌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한 달 동안 빌리는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일 년동안 빌리는 이자율 또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단기 금리를 낮추어도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장기금리는 안 움직일 수도, 혹은 오히려 상승할 수도 있다.


만약 금리 (이자율과 같은 말이다)가 낮다면 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불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반대로 금리가 높다면 사람들은 돈을 더 조금만 빌려서 공장을 더 조금 짓고 자동차와 옷을 더 조금만 살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조절하는 통화정책은 경기 변동 측면에서 금리가 낮을 때는 경기를 부양하는, 높을 때에는 과열된 경기를 식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장기적인 경제 성장과는 무관하다.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을 잘 읽으신 독자분들은 수월하게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높다와 낮다는 어떠한 기준에서 그런 것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높고 낮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이 기준이 되는 금리를 중립 이자율 (Netural rate of interest)라고 부른다. 그래서 중립 이자율보다 낮게 이자율을 조절하는 것은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고 이보다 높게 유지하는 것은 과열된 경기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중립 이자율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경제의 더 근본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운 통화정책의 배경은 이 중립 이자율에서부터 시작한다.

각국의 중립 이자율 추정치 (출처: Haver Analytics, Federal Reserve and International Monetary Fund. R*estimation)

지난 수 십 년간 선진국들의 중립 이자율은 꾸준히 하락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설명이 있지만 먼저 인플레이션이 과거보다 낮다는 점이 있다. 중립 이자율은 명목적인 이자율(우리가 거래할 때 주고받는 이자율)로 표현한 것인데 실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제거해준 실질 이자율이다 (https://brunch.co.kr/@easycomic/17 참고). 그런데 이 인플레이션이 과거보다 낮아지니 사람들은 전보다 더 낮은 이자율만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 중립 이자율은 많이 하락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여러가지 설명들이 존재하지만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 성장률이 전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사실 경제 성장률이 이 중립 이자율에 영향을 주는 것을 설명하려면 많은 이론과 공부와 복잡한 수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경제 성장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투자를 할 필요가 적어졌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다시 정리하자면 통화정책은 단기 이자율을 조정하면서 실시하고 이것의 효과는 중립 이자율을 기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중립 이자율은 지난 시간 동안 점점 낮아졌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통화량을 아무리 증가시키더라도 금리가 적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수준은 0% 근방인데, 사람들은 이자율이 마이너스라면 돈을 맡기지 않고 그냥 현금으로 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케인즈는 이를 '유동성의 함정'이라고 불렀다). 문제점을 눈치챘는가? 과거에 중립 이자율이 높다면 그보다 금리를 낮추어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았지만 중립 이자율이 점점 낮아지면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폭이 좁아진 것이다. 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국의 기준금리 (출처: 위와 동일)


그러면 이 상황에서 금리를 0보다 더 낮추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혹은 위기가 온다면 중앙은행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정책이 없고 손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미국에서는 2000년 초반을 기점으로 중앙은행 내에서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렇게 전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통화정책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불황이 찾아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그러던 중 2008년에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경제는 심한 불황에 빠지게 된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정책이 양적완화이다. 먼저 첫째 주택시장에 패닉이 오고 사람들이 주택 시장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게 되자, 국채에 비해 주택시장의 이자율이 엄청 높아지게 되었다. 주택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어렵게 되자 주택시장이 얼어붙게 되었다. 둘째, 전통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해서 조종하는 단기 금리는 0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장기 국채 금리는 그러지 않았다.


이때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단기 국채를 거래하면서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을 했지만 여기에서 벗어나 다른 채권들을 구매하게 된다. 먼저 주택 금융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국채 금리에 비해서 과도하게 높아진 주택 시장의 금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주택 대출 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y)을 직접 구매하기 시작했다 (MBS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룰 테니 이해가 어렵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기존에 장기금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던 모습에서 벗어나 직접 장기 국채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기간이 긴 장기 국채의 이자율을 낮추고, 국채에 비해 높아진 주택 금융 시장의 이자율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여담으로 사실은 양적완화라는 용어는 잘못된 용어이다. 양적완화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반 일본 중앙은행(Bank of Japan)의 정책에서 등장했다. 양적완화라는 용어에는 양적(Quantitative)이라는 말이 들어있는데, 당시 일본의 목표는 통화량을 증가시켜 대출이 많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목표가 통화량의 증가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적'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의 상황은 달랐다. 새로운 정책을 두고 내부에서도 정책의 통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렇게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정책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금융위기에 빠졌던 미국의 은행들은 현금을 미친 듯이 모으려고 했고 돈이 있더라도 대출을 잘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는 효과를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도 나중에 다루도록 하자). 그래서 새로운 정책의 목표는 통화량의 증가가 아니라 장기 국채 금리를 하락시키는 것과 동시에 마비된 주택 금융 시장을 완화시켜 경기를 부양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을 미국 중앙은행의 내부에서는 대규모 자산 매입 (LSAP, Large Scale Asset Purchase)라고 불렀고, 대외적으로는 양적완화가 아닌 신용완화(Credit easing)이라고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과거 일본의 정책의 이름으로 보도를 하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양적완화라고 정책이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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