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미혼 여자라 죄송합니다~^^~
통계를 보면 서른다섯 여자중 절반이 미혼이라는데, 왜 내 주변에는 다 결혼한 사람들 뿐일까?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한국 나이 ‘서른 다섯’이나 먹은 ‘애도 안낳고 낳을 가능성도 없어지는’ 매국노로서
몇몇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지칭하는 ‘악성 재고‘인 ‘한국’에 사는 ‘노처녀’로서 듣는 말들을 정리하고,
일상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는지 대략적으로 나마 써보고자 한다.
이글의 목적은 공감대를 찾기위한 목적도 분풀이를 하기위한 목적도 아닌 그저 사실 전달일 뿐이기에 굉장히 드라이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적어보겠다.
1. 서른 다섯 넘은 미혼 여자중에 정상 없어
아마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직 간접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concensus가 아닐까 싶다.
선입관 혹은 선입견이란 대상 인식에서 그릇된 인식과 타당성이 결여평가, 판단 등의 원인이 되는 지식이나 이해의 틀을 말한다. <위키백과>
나도 선입견이 없지는 않은 사람으로서, 왜 이렇게 다들 생각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나 조차도 36~7살이 넘어가는 남자들을 마주하게 되면, 멀쩡한데 왜 결혼을 안(못)했을까 하고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아니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스스로를 너무나도 멀쩡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 스스로의 자존감에 저런 말들이 누적되서 자꾸 쌓인다.
어딘가 하자가 있어서 결혼이라는 제도권 속에 들어가지 못한, 인생의 실패자이자 지진아 같달까?
나같이 보수적인 금융회사에 다니는 사람의 목이나 얼굴에 있는 타투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가진 선입견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 삶.
‘아니다, 정상이다‘ 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느라 쓸데없이 에너지가 고갈되는 삶.
에너지가 고갈되다 못해 이제는 그냥 하자가 있다고 하니 하자가 있겠거니 하고 살아가려 한다.
2. 왜 아직도 결혼 안하셨어요? 아직도 결혼도 안하고 뭐했어?
이것은 소개팅에 나가거나 아니면 조금 편하다 싶은 모임에 나가면 흔히들 제일 처음에 물어오는 굉장히 티피컬하고 흔한 질문이다.
조금 사회성이 있는 사람은 ‘결혼은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만약 소개팅과 같은 정말 결혼상대자를 찾으러 나온 장소에서는 위로의 말 대신 취조의 말이 먼저다.
1번 질문과 같은 맥락으로 이사람이 왜 결혼을 아직 안하고 이러고 있느냐가 정말 알고 싶기 때문이다.
가령 비혼주의라고 대답하면 결혼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일어나 자리를 떠야하는 상황이고, 만약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라고 하면 이성에게 결혼상대자로서 매력이 없나 라고 충분히 의심해봄직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장님은 내 나이만 들으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고 한다. 우리 O차장을 어쩌면 좋으냐고..(부장님, 아이구 참 업무도 바쁘신데 제 인생까지 심려를 끼쳐드려 참 죄송합니다요)
왜 결혼을 안했냐는 말에 대체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 그들이 만족을 할까, 여러 알고리즘을 생각해 봤다.
-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을 주는 버전 : 눈이 너무 높아서 맞는 사람 찾기가 힘드네요
- 겸손버전 : 노력은 많이 하는데 주변에 마땅한 사람 찾기가 어렵네요
- 해탈버전 : 제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오겠죠 (눈웃음)
- 실용적 버전 : 말 나오신 김에 소개팅좀 시켜주세요
- 갑분싸 버전 : 아 몇달전에 파혼해서요~
결혼 안하고 뭐했냐는 질문은 더 대답이 하기 힘들다. 10명 남짓 연애를 했는데 짝을 못찾았다고 할까, 연애나 결혼 말고 자기계발에 포커스를 맞추어 이것저것 했다고
해야하나..그것도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허허 하며 사람좋은 웃음 지어보일까..
순간 수많은 고민이 스쳐지나간다.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는 그 나이에 맞추어서 왜 그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타인을 의미있는 방식으로 납득시키는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한창 대학교때 유행하던 책인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처럼, 나만의 스토리로 나의 결함을 덮어야 하는 것이다.
3. 근데 결혼이 왜 하고싶으셨어요?
그렇다. 이 나이쯤 되어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되면,
남들이 다 하는 결혼에 대하여 왜 하고싶은지 혹은 왜 하기 싫은 지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보다.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이 왜 하고 싶으셨냐고, 아니면 결혼 적령기 전의 사람들에게 결혼이 왜 하기 싫으셨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앞서 말했듯 남들 다 할때 안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왜 내가 안했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변명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장 내가 왜 이 회사에 들어왔고, 너랑 왜 지금 밥을 먹고 있는지 따위와 같은 간단하고 심플한 것에 대해서도 대답을 못하겠는데,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어쩌면 가장 큰 부분에 대한 대답을 알리가..
가끔 내가 아이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이도 낳기 싫으면서 결혼은 왜 하고싶어?’라고 묻는다.
이것은 결혼은 출산을 당연히 포함한다는 명제를 디폴트값으로 깔고, 그것에 어긋나는 것을 틀림으로 규정하기에 생기는 질문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스스로에게는 당연하다고 배운 것들에 대해서 타인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어하고,
심지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 일쑤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어떤 논리로 말을 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글세요’라고 얼머무리곤 한다.
4. 가끔가다 만나는 전남친 들먹이는 소시오패스들
결혼한 전남친 드립은 웃기다. 물론 나도 결혼을 했을 경우.
그러나 결혼한 전남친 드립은 웃기지 않다. 전남친이 내가 아는 후배와 결혼을 했고, 나는 얼마전에 파혼했을 경우.
동기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새로 이사가는 지역을 말했다. 그랬더니 거기 있는 한 동기가 말했다.
“어 그럼 너 XX와 한동네 사는거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XX는 몇년전 결혼한 내 전남친이다.
전남친이 그 동네 사는 것 조차도 몰랐거니와, 전혀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가 갑자기 대뜸 들어와서 점심 밥맛을 확 떨궜다.
그러자, 다른 한 동기가 말한다
“아냐 XX 얼마전에 서초인가 방배로 이사갔잖아“
알고싶지 않은 결혼한 전남친들의 TMI를 듣고있을 때면, 이 인간들이 정말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온 정상적인 사회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나는 또 역시 웃어 넘길수 밖에 없다. 왜냐고? 거기서 정색해버리면 나는 바로 자격지심에 쩔은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는 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조금씩 곪아들어 가지만,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들여다보며 그녀의 마음속 눈물을 닦아주었다..ㅠㅠ
5. 더이상 남자 만나기는 조금 힘들거라는 유형들
주변 친구들중 미혼인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동갑이나 연상은 절대 안만날거라고들 한다. 그러니 나보고는 결국 주변에서 어쩌다 정들어서 만나는 방법밖엔 없지 않겠냐고 한다.
지가 서른 다섯인데 서른 다섯 여자는 싫다는 게 말이 안되지만서도, 여자는 출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한계를 생각해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본능적 선호이지 않을까 한다.
경제학에서도 시간제한이 있는 경제주체는 효용이 무조건 낮다. 어쩔수 없다.
그래 두고봐라 이것들아 내가 아주 주변에서 멋드러지게 만나서 멋드러지게 결혼한다
아무튼 이까지는 내가 수도없이 많이 듣는 얘기들이다. 거짓말 같다고? 거짓말 아니다. 그래서 나는 35살 이상 나와같은 미혼 여성분들에게 (비혼 말고 미혼) 찬사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정말 강하다. 우리는 남극이나 북극에 가서도 살수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마음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얼음같은 말들은 적어도 없을테니까
우리는 적도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거기는 이렇게 나를 불구덩이로 몰아 세우는 사회는 아닐테니까
파혼하고 나서 몇번의 소개팅을 하거나, 아니면 주변의 남자들이 연락이 왔는데 그것 또한 한번 소개해보고 싶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야기라 가끔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내 속도모르고 ㅋㅋㅋ를 100개씩 쓰면서 웃는 이야기들이다.
몇명 더 만나 봤는데 너랑은 다른 사람이랑는 달리 속궁합이 잘 맞는다며 끈질기게 연락하다가 거절당하니 그럼 주변에 괜찮은 여자 없냐고 물어보던….(하..)잠깐 스쳐가듯 만났던 남자 a
심심하면 전화하고 주말에 연락하다가 스쳐 지나갈때마다 슬쩍 허리랑 어깨 만지는 애없는 유뷰남 b
오랫동안 나를 좋아해왔다며 느끼지 못했냐면서 진지하게 각잡고 고백한 애있는 유부남c
요 앞 모텔에서 오늘 잘 예정이라며, 같이 좋아하는 해리포터 영화보지 않겠냐고 은근슬쩍 말 꺼내던 비혼주의 소개팅남 d
자기랑 결혼하면 강남에 있는 역 바로앞 신축 34평 아파트가 니꺼라면서 강남 사모님 되고싶지 않냐면서 결혼하자고 보채던 게이 e
뭔가 서른 다섯이 되니까 언니들이 하던 말이 의심에서 인정으로 바뀌었달까-
결혼할 생각있으면 서른둘이나 셋에는 늦어도 만나서 가라는 진심어린 말. 내가 서른 다섯이 되어보니까 소개팅 들어오는 남자들이 다 이상하다고..괜찮은 남자들은 다 짝이 있다던
그녀들의 눈물어린 조언이자 충고가 마음에 불현듯 와닿았다.
줄줄이 고백하는 유부남에, 비혼주의인데 소개팅 나와서 한탕(?)해보려는 남자에, 위장결혼 하고 싶은 게이에..
내가 만만하냐!! 내가 뭘그렇게 잘못했냐!!라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지만,
결국 돌아오는건 눈하나 깜짝 안하는 차가운 현실뿐이기에 오늘도 끝도없이 차오른 억울함을 또 한번 삼키고 씩씩히 살아가는 척을 한다.
아무튼, 이런 일기같은 허접스러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이런 글을 이런 숭고한 공간에 쓰게 되어 조금 송구스럽지만,
나는 더이상 소개팅은 (일단 당분간은) 하지 않기로 했고, 앞에 소개했던 말들은 아마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민가지 않는 이상 계속 들을 것 같고,
나는 서른다섯 미혼 여자라 죄송할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