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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May 15. 2023

다시는 이런식으로 다이아 반지를 받지 않으리라

나랑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준비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헤어진 지인을 만나서 밥을 먹었다.

딱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만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지난 연애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녀는 남자친구가 결혼을 몇년씩이나 밍기적거려서 지쳐 헤어진 케이스였다.

거의 조르고 메달리다시피 해서 반지를 받아냈던 점도 나와 같았다. 마음속에 뭔가가 불안하니까 그래 이거라도 받아놓자 해서 반지를 어찌저찌 받아놨는데

어째 반지를 받는 순간에도 기분이 영 좋지 않고, 이것이 내것일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고,

그래서 그녀는 그 반지를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한번도 끼고 다닌 적이 없다고 했다.


새삼 나와 똑같은 얘기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헤어지는 커플들은 준비 과정에서 다 똑같이 삐그덕거리는구나.


어렸을때 부터 ‘결혼’에 대한 내 로망은 딱 하나였고, 한결같았다. 네번째 손가락에서 빛나는 다이아 반지.

품에서 몰래 사온 반지를 조용히 꺼내서, 같이 티비를 볼때나 아니면 조용한 카페, 비행기 같은 둘만의 공간에서 나지막히 결혼하자고 프로포즈 해주는 것.


나는 예물도 예단도 뭐 남들 다 하는 프로포즈 가방도, 명품링도 다 필요없고 다이아 반지 하나만 받고싶었다. 티파니, 까르띠에? 그런건 꿈도 안꾼다.

그냥 종로가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 하나사서 결혼하자고 해달라고 그렇게 수십번을 말하고 받아낸 반지였다.

몰래 사오기는 커녕 그는 내가 알아본 가게에서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서 멀뚱히 서있다가 반지를 사줬고,

혼자 찾아와서 나에게 주길 내심 바랬던 기대와는 달리, 또 꾸역꾸역 나랑 같이 가서 반지를 찾았다.

생각해 보면 그가 몰래 그 반지를 찾아와서, 나에게 카페에서 ‘결혼해줄래‘라고 장난식으로 내밀었어도 펑펑울면서 고맙다고 할, 참 단순한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 정도의 센스도 없을 정도로 그는 무심했고,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이후에 그는 큰일을 다 했다는 듯이, 틈만나면 “내가 너를 위해 반지도 사줬는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빚쟁이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못받을걸 받았나..? 그렇게 계산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나도 할말이 많았다.

금전적으로 나는 그에 비해 하나도 모자란 부분이 없었고, 오히려 결혼 시장에서 조건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내가 그보다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말은 들을때마다 나의 심기를 자극했고, 둘 사이에 계산기가 들어오는 순간, 관계는 끝이었다.


끝없는 투쟁으로 어찌저찌 해서 받아낸 반지는, 참 예뻤지만, 마음속에 큰 돌덩어리가 얹힌듯 그것만 보면 숨이 턱 막혀왔다.

조금 비참하기도 했다. 친한 몇몇 친구들에게 결혼소식을 알릴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프로포즈는 어떻게 받았어” 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 때마다 “프로포즈 무슨, 반지 받았으니 됐지 뭐…” 라고 말하며 가끔 그 반지가 친구들의 ‘니 남친 너무한거 아니냐’의 방패막이 되어주곤 했지만,

그 이면의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나는 그걸 말하면서도 매번 주눅들었다.


내것이 아닌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날 위해 마음 깊숙히서 우러나와서 준 ‘나를 위한 마음이자 프로포즈 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한번도 끼고 다닌적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간 그에게 이걸 다시 돌려주는 날이 올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만약 다음번에 반지를 받는다면 절대 이런식으로 주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을거라고 말했고, 그녀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번에 반지를 받으면, 절대 이런식으론 안받으리라.

이거라도 받아서 우리 사이를 이어보자 라는 절박한 마음이 담긴 반지 말고,

내가 조르고 메달려서 받는 반지 말고,

정말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서,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어서, 어찌저찌 정보를 찾아서 서툴지만 혼자 골라온

조금은 못생기고 투박해도 그의 배려와 희생과 의지가 담긴 그런 반지를 네번째 손가락에 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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