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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Mar 29. 2023

모든 꽃이 봄에 피지는 않는다

에필로그 of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러기엔 난 너무 많이 흔들리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시련이 삶을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는 둥 세상에 넘쳐나는 위로의 글을 읽으면 쉽게 지쳤던 것도 같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왜 나에게만?'이라는 의문이다. 남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자꾸 실패를 반복하는 걸까? 시련 자체의 고통에 더해 ‘왜 나만’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시련 없이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언제부턴가 알게 됐다. 힘듦의 근원은 인생이 별 탈 없이 행복하다고 믿는 데 있었다. 내 인생은 시련 없이 특별할 것 같은 믿음, 내 삶은 행복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소망!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생은 욕망과 권태의 시계추이지 않은가? 삶은 그냥 누구에게나 지독하고 힘들다. 이 단순한 진리를 생각해 보면 시련이라는 게 나만 보면 달려 들어와 괴롭히는 무지막지한 것이 아니고 세상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항상 있는 것임이 보인다.


시련이 과연 나에게만 오는 것일까? 나 하나의 질량은 우주에서 보면 지구에서 먼지가 차지하는 질량보다 작을 것이고, 내가 마주한 시간은 영겁속 찰나에 불과하다. 은하계를 넘어 끝도 없이 펼쳐진 아득한 우주와 그 커다란 운명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 세상이 나 같은 인간 하나를 죽이려 애쓰고 달려들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 인간으로서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짐을 충실히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다가온 시련에 잡아먹히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물론 힘들지만, 누구나 버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간은 존재하고, 그 시기는 같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순간 시련은 무수한 삶의 과정 중에 하나가 되어버린다.


생명은 질기다.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죽지는 않았다. 아침이면 충실하게 눈이 떠지고 회사에 가서 웃기도 하고 귀신같이 밥때가 되면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묵묵히 숨만 쉬며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다 보면, 갑자기 괜찮아지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아름답고 성숙한 생을 살다 가라고 하는 삶의 목소리겠지. 스텝이 꼬이면 그게 바로 탱고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자, 힘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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