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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Mar 13.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11

마지막, 완전히 그를 떠나보내며

브런치에 파혼 글을 쓰면서, 어쩌면 그래도 혹시나, 이 글이 해피엔딩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가끔 하곤 했다. 견딜 수 없는 힘든일이 생겨서 내가 너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거나,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여러번 소개팅을 하고 나서도 네가 나에대한 마음이 도저히 접어지지 않아서 너의 모든 면을 다 이해할테니 다시 만나자고 빌든가 하는..드라마 같은..


하지만 드라마 속 해피엔딩은 드라마에서만 예쁜 법이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보아도 그 이후의 권태나 돈 따위를 생각하게 되는, 현실에 충실하고 세속적인 어른이 되어버렸다.


솔로가 되어서 가장 힘든점은, 주말마다 할게 없어 적적하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는 조용한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서 나 하나 사라져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무서운 마음이 엄습하고,

햇살이 너무 좋아 밖에 산책이라도 나가면 연인,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 속에서 더 외롭고 고독해지기만 한다. 그렇다고 외로워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자니, 외로움을 달래러 더 큰 괴로움을 얻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고 그런 짓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인연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될 일이다.



출장 가기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다녀와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면서, 예전에 아는 사람이 마음이 힘들때 다녀왔다는 절에 템플스테이를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집에서 조금 가까이에 있는 서울 근교의 절들은 모두 꽉차서, 하는수 없이 남양주에 있는 절으로 향했다.


오묘하다는 묘적사는 오묘하다기 보단 오히려 평화롭고 소박했다. 초봄의 따뜻한 낮 햇살에 고양이 세마리가 흙바닥에서 나뒹굴며 햇빛을 맞고 있었고,

한국에 있는 세개중의 하나라는 팔각 석탑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으며, 석탑 꼭짓점마다 달린 수십개 종들이 바람이 지나갈때마다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아 내가 정말 절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시선을 살짝 내려보면 절 한가운데 대웅전이 위치했고, 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여기야 말로 정말 오묘한 석굴암이 있었다.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던 사람들은 참 많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신을 만들고 여러가지 종교가 탄생한다. 엔도 슈사쿠 소설 <깊은 강>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된다’

교리는 모두 다르지만 다들 힘겨운 삶에 대한 나름의 위안과 해결책을 준다는 점에서 각각 수도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신은 동일하다.


불교에서는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연연하면서 바꿀수 없는것과 이루어지지 않을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집착, 걱정, 생각하는 마음때문에 현생의 고통이 찾아온다고 본다. 고통을 놓아버리는 방법중의 하나는 그래서 ‘현존’이다. 즉 현생, 지금 이 순간만을 살으라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읽은 책에 나와있는 여러 불교 경전에서도 같은 내용의 문구를 찾아 볼 수 있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존재한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오지않은 미래를 기다리지 않아야 한다.
오직 현재의 한 순간만을 굳게 지키며 진실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선이 길이다.
<법구경>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가고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살아간다.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채근담>


근심과 걱정은 집착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집착이 없는 이에게는 근심도 걱정도 없다.
<숫타니파타>


누군가가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과거가 있어서 현재가 있는것이고, 현재가 미래에 연결이 되어있기에 어쩔 수 없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인데 어떻게 현재만을 생각하고 살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중 그 누가 그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겠느냐,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아라. 가끔씩 깨닫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너의 노력조차도 대단한 것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그냥 흘려보내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여기 와서 하루 잔다고,
세상 안바뀌고 안 달라진다.
작은거 하면서 크고 대단한 것 바라면 그것도 화가 되는법이다.
그냥 아무생각말고 쉴때 편안하게 쉬고 가라.


내 말 자체도 쓸데 없는 것이니, 이 말에 크게 담아두지 말고, 거기에 구속되지 말라고 하시는 적당한 가벼움이 좋았다. 신을 믿지 않고 종교를 믿지 않는 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이다.




파혼을 결정했을때 그가 너무 싫고 미웠다. 내 인생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내 맘대로 되지않고,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는 그 남자만 생각하면 화가나서 미칠것 같았다.

헤어지고 나서도 꽤 많은 시간동안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아 내 마음에 깊이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이러한 집착이 내 인생에 독약이 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차 미움이 사라지니 어느샌가 그가 불쌍해졌다. 나는 그의 어렵고 힘든 삶을 알았고, 함께 마주했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이겨낼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순탄하진 않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하게.


언젠가 심리상담 선생님이 나와 그의 싸우는 패턴을 듣더니 해준 말이 있다.


“그 남자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내가 이래도 날 떠나지 않을래? 내가 이래도 넌 내 옆에 있을거지? 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과 무서움이 너무 커서 어쩌면 마음속 깊숙히 누군가가 자신을 또 떠난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것 같아요.“


그의 모난 부분과 그의 결핍을 껴안아 주지 못했던 것이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겠구나. 그의 상처를 안아주기 보다 나는 항상 ‘너는 왜이래?‘ 라고 다그치는 편이었을 것이다.

내가 좀더 선하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그에게도 나에게도 이런 끝은 아니었을텐데, 많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나니 정말 그가 정리된 느낌이었다.


과거에 집착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때문에 미래에 연연하며 살지 않아야겠다.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가 된 이후에 만나게 되는 다음 사람에게는 정말 후회없이 그 사람 자체, 전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게 내 길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가 나에게 줬던 상처를 용서하고, 또 내가 그에게 줬던 상처도 부디 금새 무뎌져서 그가 마음편하고 덜 괴롭게 살수 있기를.

평생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살아온 그가 정말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무엇을 받는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만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를, 사랑을 위해 모든걸 내어줄수 있을 마음을 가질수 있기를,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처음으로 한 남을 위한 기도였으며, 또한 처음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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