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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Feb 26. 2023

결혼 두달전 파혼했습니다_10

왜 꼭 이 남자여야 했는가?

거의 한달 내내 악몽을 꾸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사귈때는 그렇게 안나오던 그사람이, 헤어지고 나니 매일 꿈속에 등장했다. 꿈속에서 감정이 사라져 차가워진 그의 얼굴을 매일 봤다.

헤어지고, 다음날에 또 헤어지고, 끊임없이 다른방식으로 헤어지기만 했다.

아침마다 깨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침대 모퉁이에 멍하니 앉아있다, 가기 싫어 미치겠는 몸을 일으켜세워 꾸역꾸역 회사에 나갔다.

회사에 가서는 아무일도 없다는듯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반복됐고,

게다가 하루도 쉴 시간을 주지않는 업무까지 겹쳐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느껴졌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제발 오늘밤에 잠이 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고 조용히 죽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일까, 난 매일 꼬박꼬박 아침 알람소리에 충실히 눈을 떴고, 내 앞에 놓여있는 숨막히게 무거운 하루를 마주했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외로워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는 질긴 생명이 원망스러웠다.

핸들을 조금 꺽고 싶을때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슬쩍 내려볼때마다, 엄마의 선한눈을 떠올렸다.

그래도 살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하지 않고 숨만쉬며 버텼지만

삶의 의지와 희망이라는 것이 하나씩 사라져서 저 깊은곳 어딘가로 파묻혀 들어가는 것을 생생한 감각으로 느낄수 있었다.

죽을 방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살 방법도 없는 나날들 이었다.


언제나처럼 혼자, 그렇게 나를 집어삼켜서 잠식해 버리는 밤을 여러번 보내고 나니, 뿌옇고 시커멓던 것들이 썰물처럼 서서히 흘러 나갔고,

숨겨져있던, 그간 무시했던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저변에서 한두개씩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살아내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오롯이 혼자일때 나온다.




많이 괜찮아진 일요일 아침,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남은 흔적을 지워버렸다.

지금 이시간대에는 뭐하려나, 집에서 또 개발하고 있으려나, 술마시고 있으려나, 소개팅 하고 있으려나..

멍하니 조금 생각하다가도 금새 생각을 멈춰버린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

자연스럽게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기 위해 하는 생각의 고리들은 차단하는 것이 낫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까지 잘해준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그리울까 싶은데 그냥 관성때문이었던 것 같다.

퇴근하면 누가 집에 있고,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 그 따스함이 그리웠던 것이었고

주말에 딱히 약속잡지 않고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둘이 함께 뭐든지 할 수 있는 그 당연함이 그리웠던 것이었고

여자 혼자서 하기 힘든 것들, 살아가면서 남성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을 채워주는 안도감이 그리웠던 것이이다.

그냥 인생에서 ‘둘’이라는 안정감이 좋았던것.




하지만, 이 남자와 결혼을 왜 하고 싶었어? 라는 질문에 안정감 따위를 말하는 것은 질문의 맥락에서 한참 빗겨가 있다.

왜’ 이 남자여야만 했는가 라는 질문은 왜 하필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이 사람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물음이라면

안정감이라는 것은 꼭 이 사람이 아니어도 얻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특별함을 상실한다.

오히려 ‘요리나 청소를 잘해’라든지 아니면 ‘돈은 잘버는데 돈을 안써’라는 대답이 속물적이지만 더 특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결혼에 대한 접근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쉽게 놓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되는 대체불가능한 특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들도 나에게 줄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만을 쫒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이 왜 그렇게 ‘특별’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특별함이 모여 평범함이 된 것일 뿐,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어느것 하나 나름대로 특별하지 않은것이 없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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