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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Nov 26. 2023

남들이 말하는 신의직장 10년 다니고, 결국 얻은건

우울증과 공항장애

정확히 2013년 입사했다. 이 직장은 필기시험을 보고, 면접을 두차례 본 후 나에게 합격 전화를 주었고 일주일 뒤에 신입사원 연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한 취업준비 과정을 겨우 끝내고 단 일주일, 급하게 정장 몇벌을 사고 학교 사물함을 정리할 정도의 여유 시간을 가지다가 회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 2023년 말, 나는 10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다.

입사할때는 남들이 말하는 소위 신의 직장을 들어갔다며 축하를 받았고,

10년을 다니면서 한번도 쉬지 않고 한 곳을 꾸준히 다닌 나를 사람들은 칭찬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이 한번씩 육아 휴직을 들어가거나 휴직을 내고 남편을 따라 외국에 잠시 다녀오거나

자비 유학을 다녀오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지점이나 파견근무를 한번씩 갔다 왔지만

나는 마치 붙박이장처럼 회사 본점을 묵묵히 지켰다.


정말 바보같고 미련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리스크는 회피하고 싶어하는 내 성향과 결부되어, 보수적인 이 회사는

가만히 그 자리에서 앉아 일하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용하기 쉽고 비용 안드는 소모품처럼 굴려댔다.

드러나지도 않는 고생스러운 일을 할때도, 인신모욕을 해대는 상사를 만났을때도,

손하나 까딱 안하고 모든 일을 나에게 시키는 능력없는 책임자를 만났을때도,

회사에서 유부남에게 성희롱을 당했을때도,

내가 한일에 대해 인정해주지 않아 기분이 나쁠 때에도 나는 회사에서 아무런 이슈를 일으키지 않고

그저 아홉시에 출근해 여섯시에 퇴근하는-가끔 야근하고- 벙어리처럼 살았다.


그러지 말았어야했다. 그 상처들이 점점 누적이 되어 마음에 병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으레 직장인들이 다들 그런거지, 원래 돈버는건 다들 힘들어 하며 친구들과 잠깐씩 화날때마다 말하며 웃고 넘기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해소되지 않은채 켜켜히 누적되어 마음에 덕지덕지 때로 끼어 있었다.


지금 있는 부서는 일이 많고 힘들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나는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고 이바지가 되는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자위했고,

하라는 것 시키는 것 거역하지 않고 종종 주말이나 공휴일도 출근해서 일을 하며 모든 것을 소화해냈다.

그러던 무렾 팀에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천재라고들 했다. 우리 회사에서 몇 안되는 천재로 꼽히는 여자 팀장이고 일을 너무 잘해서 앞으로 이 회사에서 승승장구 할 것이며

너는 그녀에게 밉보이면 앞으로 회사 생활 끝이라고들 했다.

아무리 화나고 짜증나도 그냥 꾹 참으라고 당부했다.


그 여자를 만나고 나는 고통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개구리를 찬물속에 넣고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 마치 인지하지 못한채 익어 죽는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찬물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거의 죽기 직전의 물 온도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지옥속에서 나는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10년간의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고

나를 옥죄어오고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나와 내 주변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난 4개월 동안 나는 헐떡헐떡 숨을 쉬며 겨우 회사에 다녔다.

정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뚱이를 끌고 겨우 회사에 출근해 숨만쉬고 버티자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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