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증상의 시작
팀장님이 나에게 쏘아붙이면서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은 부임하고 나서 몇달 후 였던것 같다.
처음 화내기가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역치가 낮아져 조금만 맘에 안들어도 짜증을 내버리는 것이 인간관계다.
어떨땐 미워하는 감정이 가득 담겨서
어떨때는 한심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다는듯이
어떨때는 살살 비꼬면서
또 어떨때는 빈정거리면서 나를 대하는 모습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일이 터졌다.
외부기관에서 온 사람들과 중요한 회의를 하러 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팀장님은 또 나에게 쏘아붙이면서 화를 냈다.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인내심이 뚝 끊겨버리고, 이젠 정말 못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런생각이 드니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뒤삼켰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참으려고 해도 미친사람처럼 눈물이 나와서 오열을 했고, 회의실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약 1시간 동안 밖에서 울다가, 사무실에 되돌아갔다. 비참하고 슬프고 모욕적이었다.
그 날 이후로, 팀장님 면담을 하고 이것 저것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내 감정과 상처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똑같은 말만 반복했고,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은 그냥 일을 줄여주는 정도였다.
난 일이 많아서 운게 아니라고!
마치 교묘하게 일이 많아서 찡찡거리는 사람 취급을 한 것 같아 더 화가 나는 하루하루들이었다.
그날 이후 난 팀장님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너무 빨리뛰고, 숨이 안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귓가에서 삐-하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소리를 듣거나 혹은 옆라인 책임자 A와 웃고 떠느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뒤틀리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숨이 안쉬어지니까 나도 어쩌지 못하는 공포와 답답함이 함께 다가왔다.
겨우겨우 그 시간을 버티고 집에 돌아오면 눈물 바다의 시작이었다. 스스로 자책을 하며 우울의 나락에 빠져서 매일 술을 마시거나 울며 잠들기 일쑤였다.
인생에서 나의 존재 가치가 무의미해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파괴적으로 사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찾은 정신과였다.
처음 갔을때는 전혀 휴직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었다. 그냥 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약물의 도움을 받아 잠이라도 잘 들 수 있게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신과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하고 결과를 말해주었고, 약을 많이 처방해주었다.
무슨 설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약을 받아왔고 의사선생님은 술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술을 끊을 수가 없었던 상태기에 더 괴로웠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 6개월짜리 연수가 떴다. 여길 지원해서 붙으면 내년 상반기동안 해외에 나가서 반년간 연수를 받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너무 다행이도, 이 연수 프로그램은 내가 그동안 해온 업무와 직접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또한 그 연수를 다녀오면 내가 있는 부점에서 계속 근무하는 조건이었기에 나는 이게 신이 불쌍한 나에게 내리신 마지막 광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지원서를 쓰고, 첨삭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에게 모두 부탁했다. 팀장님도 내가 나간다는 사실에 내심 신났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봐주고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아- 해외에서 반년간 살면서 10년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많이 지친 몸과 마음도 위로하고, 또 그 연수를 들으면서 지금 하는 업무에 대해서 더 배우고,
또 혹시나 모르지 외국에나가서 인연을 마날수 있을지도 모르고..
발표를 기다리는 몇일간 힘들었지만 너무나도 떨리고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했다.
연차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내가 적임자일 것 같았고, 심지어 이번에 항상 1명을 뽑던 연수에서 역대급 인원인 !! 2명을 뽑는다고 했다.
더더욱이나 가능성이 올라간 것이다.
내 암울한 인생의 마지막 기회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나
드디어 내가 그동안 묵묵히 참고 일한 보상을 받겠구나 싶어서 팀장님과 회사가 너무 힘들었지만 달력에 X를 하루하루 치면서 발표를 기다렸다.
사람은 미래를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흠뻑 느끼며 그렇게 하루하루 애타게 발표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