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asyeah Dec 02. 2023

정신과 진단서로 휴직을 결심하다

회사에 오만정이 떨어졌거든요

목요일에 발표가 난다고 했는데 또 계속 미뤄졌다.

고작 반년짜리 연수 두명 뽑는데 왜이렇게 오래걸리지.. 불안한 상상이 들었다.

혹시나 안되면- 이라는 그동안 아예 불안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혹시 안되면, 나 정말 어떡해하지?

휴직도 못하는 상황이고, 부서이동도.. 하려면 하지만.. 그것 조차도 정말 쉽지 않은 옵션인데..


기다리면서도 정신없이 일을 했다. 금요일 점심시간이 다될쯤 그동안 준비한 프로젝트 세부 내용에 대해서 임원진보고에 들어가 있을때 발표가 났나보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한명은 4년차 여자 대리,

한명은 나랑 비슷한 연차의 검사부 근무 남자 차장..


……..????????????????

나 대신 4년차 여자 대리가 간다고?

나 대신 이 연수와 관련있는 유관부서에는 전혀 근무 경험이 없는 차장을 보낸다고??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인사부에 연락해서 정확한 선정 근거라도 객관적으로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 동기들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저기서 너가 밀릴수가 있냐는 반응.


선정기준만 물어보니, 고과라는 둥 두루뭉실한 답변을 했다. 우리회사는 직급별 연.공.서.열순으로 고과를 주는 회사이다. 당연히 4-5 년차 여자 대리가 초임 차장인 나보다 고과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럼 이 연수는 고참 대리나 고참 차장만 가는 연수란 말인가?

그럼 선정 기준이라도 써놓던가 왜 유관부서라는 말을 써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는가.


회사에 서운했다. 너무 서운하고 섭섭했다. 10년이라는 세월 자체를 무기로 쓰고 싶지는 않다. 근데 나는 그동안 정말 묵묵하고도 조용하게 나를 희생했다.

자전거 사고가 나서 갈비뼈에 금이가고 손이 부러져서 깁스를 했을때도 바쁜 부서에 있어서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무도 나에게 들어가 하루만이라도 쉬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일했는데 이걸 못준다고.?


그리고 결국 이 회사는 나에게 무언가를 줄 마음이 없구나를 깨닫게 됐다. 그냥 쓰고 단물 빨아먹고 고고한 척 객관적인척 고과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논리적인척 대응하다 수긍안하면 내팽개치면 그만.


그동안 왜 모든것을 참고 버티고, 책임감 다해 노력을 했는지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부장님과 팀장님도 와서 심심치않은 위로를 전했지만, 그마저도 원망스러웠다. 위선적인 사람들.


오후반차를 내고 집에 가려고 나왔다.

지하1층 지하주차장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차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 30분을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차가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채로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사 주차장에서 우는 내가 너무 가여웠다.


집에와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더이상 살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앞이 막막해서 내일이 오는 것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삶의 희망 하나가 꺽인 느낌이었다.

어떻게 죽을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술을 마시고 고통없이 죽는 방법을 연구할테다.


그리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휴직을 써야겠다. 날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든 회사에게 더이상 희생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으니

나도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 앞으로는 이 회사에 책임감도 일말의 소속감과 애사심도 없을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려는 노력도, 주변 사람들과 무난하게 잘 지내려는 노력, 시도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난 진단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 인사부와 싸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휴직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팀장님 제발 화좀 그만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