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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Dec 08. 2023

정신과 진단서를 끊는다는 것

태어나서 정신과 진단서를 끊어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나 공황장애 걸리겠어. 나 우울증 걸리겠어’ 가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한 병명으로 명문화를 하다니.

옛날같으면 기함을 할 일이었을 것이며 진단서가 줄 파급효과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하게 될 이직, 아니면 결혼, 아니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어떤 미래 기회에서의 걸림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조차 고려하지 못할 만큼 지쳤단 것이 문제였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가서 진단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매번 갈때마다 미치겠는 마음에 펑펑 울었지만, 점점 내가 느끼는 절망과 우울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회사 조금만 쉴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많이도 아니고 진짜 삼개월 쉬면 살수 있을것 같았다.


‘ 선생님, 저 더이상 살아낼 자신이 없어요.

이제껏 살면서 저는 제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힘든 가정환경 속에서 공부할때도 회사다니면서 팀원 몇명 실제로 휴직 보낸 미친 사람 아래에서 일할때도, 그냥 꾸역꾸역 이겨내며 일했어요.

근데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제가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에요.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에 대해 검색하고 생각하는지 몰라요. 매일 술을 마시고 구체적인 죽음의 방법만을 끊임없이 생각해요. 너무 죽고 싶은데 또 너무 억울해요. 제가 피해자잖아요. 왜 저만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어야 하나요?

저도 휴직하고 싶지 않아요. 휴직하면 평생 다녀야 하는 저희같은 회사에서 커리어 끝나는거에요. 앞으로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할거 알아요. 근데 그런거 생각조차도 못할정도로 지금 제가 제정신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며 울었다.


선생님은 아이고… 하시며 지금까지한 검사지와 뇌파결과, 그리고 면담을 바탕으로 진단서를 써줄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단서에 기간명시(향후 ㅇ개월 안정가료 요함) 절대 해줄수 없다고 당부했다. 나는 그때 진단서에 어떤 항목이 들어가야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 의사는 진단서는 생각하지 말라며 약을 먹고 너가 나아지는게 목적이지 우리는 진단서로 회사를 쉬는 것은 생각하지 말자는 식으로 말했다. 내 정신을 이상하게 만든사람이 내 1 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나를 매일 같이 괴롭히고 미치게 하는데, 그 사람과 하루 8시간 이상을 같이 있으면서 심지어 일을 해야하는데 약을 먹고 니가 괜찮아지라니.


내가 약을 먹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약을 먹으면 그 당시에 조금 나아지고 잠이 조금 잘 올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지?

이건 마치 의사가 암에 걸린 사람에게 암을 도려내는 대신 고통을 덜 느끼게 해줄수 있게 진통제를 계속 수혈해줄게 라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


다음날 회사에 와서 인사부에 문의를 했는데, 휴직을 하려면 진단서에 기간 명시가 필수라고 했다. 아니면 아예 받아줄 수조차 없다고..

나는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다니던 정신과에 다시

전화해서 확인했지만 다시 한번 기간 명시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병명이 기재된 진단서는 끊어주면서 왜 기간을 못써주는 걸까? 의사면허를 걸고 마치 객관적이지 않은 자료로 추정을 하는 것 같아서일까?


그래서 나는 다른 병원을 알아봤다. 주변에 진단서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블라인드나 동네 카페를 미친듯 검색하고, 집이나 회사 근처 정신과에 사정을 설명하며 전화를 했다.


인사 이동에 맞춰서 휴직을 들어가야 누구에게든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휴직할 수 있을것 같았고, 그러려면 진단서를 받기 전 한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정 안되면 손목을 긋거나 약을 다 털어넣어서 응급실에 실려가기라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절박하게 진단서를 찾아헤멨다. 나에게 이 사람과 그리고 거지같은 회사와 잠시 분리될 방법은,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질 방법은 이것 뿐이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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