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누구일까
하릴없는 주말이 계속 반복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갔던 모임,
가기전까지 갈까 말까 수백번을 고민하다 휴직할때 내 목표중의 하나였던 ‘나의 comfort zone을 벗어나 보기’ 를 지키기 위하여 용기를 냈다.
남의집이라는 플랫폼에서 불특정 다수가 남여 성비에 맞추어 모여 노는 모임이었는데-뭐 오는사람 대부분의 목적이 혹시라도 맘에 드는 이성이 있어서 자만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겠지만- 괜히 나이때문에 가기전부터 한껏 자신감이 사라졌지만, 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가는 길 내내 설레고 떨리는 마음에 한껏 들떴기도 하였다.
가는길에 눈이 와서 나는 9번째로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오는 순서대로 착석하는 좌석에서 그는 내 앞에 앉아있었다.
사회자(주최자)가 앞에 앉은 사람이 오늘의 당신의 ‘짝‘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을때 나는 그와 눈을 맞추어 인사를 나누었다.
평생 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양아치느낌(그 자신도 스스로를 양아치외모라고 평했다)이 물씬 풍기는 겉모습, 얄쌍하고 날카로운 눈매에 잘생긴 외모, 왼손목과 손가락의 타투, 악세사리들..
그가 왜 나를 마음에 들어했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고, 내 나이도 그보다 4살이나 많았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고 하며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번호를 물어보는 그를 거절하지 않았던 이유는, 한번쯤은 아주 잠깐동안만은 답답한 내 주변 세계에서 벗어나서 아무생각없이 그와 놀고 싶어서 였을것이다.
그렇게 그를 한달을 만났다. 사귄건 아니었고 만나서 술마시고 데이트하고 매일 연락을 하고 전화를 하면서 스퀸십은 없었지 마치 사귀는 사이처럼 지냈다.
그와 계속 만날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선은 정해 놓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어떤 남자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나의 본심이나 마음 저 아래에 있는 이야기, 그동안 살았던 삶의 이야기 등을 하면서 (아마 그가 먼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줘서 그랬는지) 그에게 많이 빠져들었다.
결국 사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른 어떤 남자와의 시작보다 마음을 활짝 열었던 것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때 항상 연락이 힘들었다. 전화는 그나마 괜찮았던것 같은데, 카톡은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항상 재미가 없었다.
의무적으로 몇달 몇년씩 연락을 이어가다보면, 떨어져 있을때는 내가 카톡 로봇이 된건지, 이사람의 여자친구인지 헷갈렸다.
카톡이라는 것이 아예 없어졌으면 이라고 생각한 적이종종 있을정도였다.
누군가를 만날때 항상 말로는 ‘대화가 잘 통화고 티키타카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20대 때 만났던 사람을 제외하고 내 30대 연애는 생각해보면 전부 대화가 안되는 남자들뿐이었다. 다들 ST성향의 공대나 이과생들이었고, 차가운 사람들이었으며 계산적이었고 말수도 적었다.
어디가면 연락이 뚝 끊기고, 집에있을땐 본인들만의 세계에 빠져서 연락을 안하던 남자들이었으며, 본인의 사랑방식에 반기를 들면 바로 지친다며 헤어짐을 고하는
어쩌면 티피컬한, 삶의 무게에 찌들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인 남자 그자체라고 말하면 되려나
뭐 그도 그럴것이, 나의 30대 때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대화나 편안함 따위의 것이 아닌 ‘육각형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키, 몸무게, 외모 : 그래 예선 통과 이제부터 다른걸 봐보자
학벌, 직업, 연봉 : 나랑 비슷하네? 통과
집안, 바른 가치관 : 이정도면 괜찮네? 통과
이렇게 체를 거르고 걸러서 사람을 만나다보니 결국 사랑과 대화는 가장 나중에 보는 조건들이 되어버렸고,
나이가 더 들면서 안보는 조건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조건 보지 않고 우연히 만난 그와 전화를 하거나 만나면 새벽까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낮에 만나 정신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시간을 보면 새벽 세시고,
전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하다 문득 또 시간을 보면 새벽 두시고,
카톡을 하면서도 이야기 거리가 계속 생겨서 실시간으로 몇십분을 핸드폰을 붙잡고 있고(난생처음 한 경험이었다) 하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누군가를 계산없이 만난 날들이 과연 언제였을까, 나에게 있기는 했을까.
마음이 맞는 인연과 그를 만나며 만들어가는 이야기, 설렘은 이렇게나 짜릿하고 재미있는 것들이었다.
진지하게 결혼상대를 찾고 있는 그의 시간을 더이상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아 어제 나는 그에게 썸의 종결을 말했다.
후회할 것 같아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나와는 다르게 정말 결혼할 사랑, 사람을 찾고 싶어했고, 나는 그와 함께 현실의 벽을 다 깨부수고 진지한 만남을 약속해 줄 수 없을음 너무 잘 알았다.
한달동안 지켜본 그는 외모와는 다르게 참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공부는 안했지만 생활력은 강했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좋은 사람과 돈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편견과 계산이 없었고, 그래서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자신만의 관점과 방법으로 누군가를 자기 삶으로 활짝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처럼 발버둥치면서 살지는 않지만 많은것을 이루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자체를 아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대화 속에서 그가 가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서 살지말고, 너가 원하는 삶을 너가 주체적으로 살아라‘라고 말한적이 몇번 있었는데,
항상 타인의 시선속에서 그들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온 내가 - 그리고 결국 그걸 포기하지 못해서 그와 만남을 지속할 수 없었던 내가- 너무 부끄럽다.
어쩌면 나는 세상사람들이 가진 가장 필요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