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더(Hoarder) 챕터2 사고

by 이지혜Emily

챕터2 사고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 같기 때문이다. 10월 초였다. 그즈음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두터운 옷을 입지않을 정도로 기분좋은 가을이었다. 나는 제법 말을 잘 듣고 똑똑하지 못한 아이였는데 지금 돌이켜생각해 보면 내 세계에만 갇혀 지내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생 처음 백화점이라는 곳을 갔다. 신세계 백화점. 당시 엄마는 형편에 맞지 않게 약간의 허세스러운 바람이 불면 분위기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곤 했는데 이때는 내게 약간은 까칠스러운 동생이 생기고 우리 엄마는 우리 둘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내가 마치 부잣집 아이가 된 것 마냥 백화점을 둘러보는 쾌감을 느끼며 마네킹의 옷들을 쏘아보았다. 허세와 사치의 냄새가 떠돌았다. 내 동생은 누가 내 동생 아니랠까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엄마, 저거!”라고 정확하게 자기 취향을 당당하게 어필해 보였다. “칫, 우리가 그런 옷을 사입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조르는 내 동생을 비웃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반응한다. “저거?” 나는 화들짝 놀라 엄마를 본다. 엄마가 옷에 관심을 보이니 점원이 다가왔다. 나는 몸시 언짢은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음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엄마와 동생 뒤에서 서성인다.


“네, 돌아보고 다시 또 올께요”, “네 그러세요.” 익숙하게 판에 빠진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내 동생 머릿 속에 비집고 들어간 옷 하나가 엄마와 밀당을 펼치며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찰나에 엄마가 놀래서 급히 서두르기 시작한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아빠 밥 줘야 되는데...” 나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내 동생은 백화점을 나오기까지 그토록 마음에 들었던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만들게 했던 푸른 드레스에 대한 선망에 휩싸인 채 툴툴거리며 문 밖을 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우리 둘 보러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동생 잘 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곳은 정문 입구 회전문이 돌던 곳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돌아가는 회전문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동생도 옆에 잘 있었다. 사람들이 잘도 들어오고 나가는구나...이 회전문이란...이 때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전문이 돌아가는 문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알고 그런 것이었을까. 모르고 그런 것이었을까. 지금도 내게 반문한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내 팔목은 뼈에 손상이 갔음이 틀림없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놀라서 우리에게로 달려온다. 엄마도 저쪽에서 달려온다. “아이고 이거. 애가 문에 팔이 끼어 찌었나본데...” 걱정스러운 어른들의 눈빛으로 내 눈물은 사글어들었지만 나는 이런 나에게 놀랐다. 백화점 근처 응급실로 급히 이송되어 나는 팔에 기부스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이게 불행의 끝이 아니었다. 신세계백화점 앞으로 다시 돌아나와 버스를 타려고 음침하고 달갑지않은 비탈길을 걸어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비켜” 우리 위로 니어커를 가파른 비탈길로 술취한 어떤 미친 아저씨가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엄마와 내 동생,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달려드는 아저씨를 쳐다보며 온 몸이 굳어있는데, 엄마가 옆으로 비켜! 얼른! 하고 우리를 길가 옆으로 최대한 붙여놓고는 엄마는 그대로 그 니어커에 치여 박혔다. 나는 그 뒤로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다음 장면은 엄마가 병원에 누워있다. 외숙모, 외삼촌, 외할머니가 차례로 다녀가며 걱정했고 나를 누가 데리고 있을 것인지를 상의한다.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나 자신을 경멸하면서 자책 속으로 단단히 파고들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동생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외가댁 어디로 옮겨진 것 같다.

결국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머무르게 된 듯 하다. 내가 그러고 싶다고 했던 것 같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내 의사를 밝힌 기억이 난다. TV소리가 방 안을 잔뜩 채우고 익숙한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엄마가 한 밤이 지나도 오지않고 두 밤이 지나도 오지않고 세 밤이 지나도 오지 않았으니까... 너무 기다리다가 지쳐서 하룻 밤들을 세기 포기했을 무렵 엄마가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엄마가 온다. 엄마가 온다.” 나는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더 간절하고 더 조급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다. 엄마는 내가 기다리다 못해 지쳐 포기할 즈음 돌아왔다.


나는 엄마를 살폈다. 엄마는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셋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엄마는 아빠의 “밥 아직도 멀었냐!”는 윽박에 “에휴, 다 됐어요”라고 마음졸이는 말투로 늘 그랬던 것처럼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돌아온 일상을 보낸다고 느끼고 있었다. 없었던 일로 여기고 있었다. 안도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 때 그 남자가 나타났다! 그 미친 놈! 그 미친 놈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미친 놈이 아버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그리고 아버지 옆에 엄마가 앉아있었다. 처음에 그 놈은 이렇게 운을 뗐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정말 그 날은...”, “그래서! 그래서!”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 놈을 똑똑히 보았다. 다른 곳에 한 눈 팔지도 않고 그 놈을 똑똑히 보았다. 어떻게 생긴 놈인가 궁금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 날 그 놈은 미친 놈처럼 언덕 가파른 길을 “비켜!”하고 니어커를 앞세워 내달리고 있었다. 재빨리 엄마가 열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사람이 죽을 뻔 했다구요. 아니, 제가 병원에서 얼마나 나왔는지나 알고 계세요?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참나, 아니, 어디서 미친 놈이 저저저기 언덕위에서 니어커를 몰고 세상에! 무섭게 비켜! 하고 소리를 지르는거예요. 그래서 봤더니 술취한 것 같은 남자가 냅다 소리를 내지르면서 달겨드는데...!


뒤이어 그 아저씨가 어디라고 엄마한테 대꾸를 한다. “그래서 제가 그 때 비켜하고 했다니까요.” 아버지가 눈살을 조금 찌뿌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제가 사연이 있어서 그날 술을 마시고 니어커를 그냥 여느날처럼 끌고 내려가는데 하필이면 그 날 눈이 와서 니어커가 마구 굴러가는데 전혀 손 쓸 수가 없어서... 사람이 저만치 앞에 보이길래 ‘비켜!’, ‘비키라’고 소리를 쳤는데 아니, 글쎄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을 줄 누가알았겠습니까?” 그 아저씨는 엄마가 아닌 아버지에게다 대고 사정사정을 했다. 엄마는 그 말에 어이없어하며 “우리가 애랑 나랑 얼마나 놀랐는데, 너무 놀래서 애를 옆으로 치우고 나도 옆으로 피한다고 피했는데 당신이 쳤잖아요! 제가 옆에 피한다고 피한거예요! 옆으로! 우리 애를 정원 안으로 들여놓고 저는 그 가에 서있었다구요!” 이때 내 소원은 단 한가지였다. 아버지가 소리질러주는 것.


'그 놈을 혼내줘요! 아버지! 저 못된 놈을 혼쭐을 내야해요! 엄마가 저 아저씨 때문에 죽을 뻔 했어요! 저는 그 옆에서 다 봤어요! 엄마가 나를 안에다가 들여놓고 엄마도 피한다고 피했어요! 우리는 길 가 가장자리에 있었어요! 저 아저씨가 우리를 들이박았어요! 엄마가! 엄마가!'


나는 속으로 고래고래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논변했다. 좁디좁은 안방에서 TV소리 하나 없이 나의 살기와 엄마의 화풀이, 그리고 아버지의 정적이 담배 연기와 함께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실랑이와 말다툼이 오가고 엄마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그 아저씨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담배만 뻐끔뻐끔 태우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아빠의 고함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처음 뗀 소리는 이것이었다. “으유! 당신은 조용히나 있어! 가만히 있지 못해! 왜 애를 거기까지 데려가 가지고! 으유! 으유!”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것은 내가 예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고함소리였다. 아버지는 끝끝내 그 아저씨가 우리 집에서 나가 사라질 때까지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 아저씨에게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물론 화는 났겠지만 내게 들리는 내가 들을 수 있는 혼내는 말투나 소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아저씨를 상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말도 내뱉지 않았고 조곤조곤 얘기했다. 그리고 엄마가 끼어들 때마다 엄마를 나무랐다. 끝에가서 그 아저씨는 엎드려 사과하고 사과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엄마도 보았지만 엄마는 끝까지 화를 참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엄마한테 윽박질렀다. 그렇게 그 아저씨가 떠났다. 원하는 합의서를 가지고 떠났다.


나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어린 나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당시 정말 그랬기 때문이다. 엄마는 부엌 모서리에서 궁시렁궁시렁 불만을 내뿜었다. 아니 그것은 불만을 내뿜는 것이 아닌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분해서 눈물이 났다. 당시 엄마, 아빠가 보는 앞에서 울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으면 야단맞을 것 같아서 속으로 삭힌 기억이 난다.


나는 엄마의 말투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엄마는 무섭지 않다. 그러니까 엄마의 말투는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도 징징대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소리라는 것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 내삼키는 법을 묘하게 구사했다. 아버지한테 불만을 터뜨릴 때에도 눈치를 보며 늘 말꼬리를 내렸다. 행동도 그러했다. 늘 무언가 잘못해서 죄를 지은 듯한 비굴한 모습을 하고 상을 차려 부엌부터 안방까지 들고 왔다. 그런 엄마의 모습과 말투는 내게 맘졸이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게 했다. 엄마의 상황에 몰입하면 엄마의 마음에 감정이입하게 되고 나 역시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 마음이 되었다. “아이참, 엄마는 왜 이렇게 밥이 늦는거야...”

나는 그러한 수분기를 머금고 자랐다. 뭐든, 내 탓인 것 같았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우리 현관문을 들어서 안방에 들어와 내 눈앞에 나타났던 그 날만큼은 나는 자책하지 않았다. 그날은 내 탓을 하지 않았다. 그놈을 욕하고 열심히 혼내주었다. 열심히 엄마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혼내주기를...소리쳐주기를...그러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 아저씨를 향해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작은 증오심 씨앗 하나가 최초로 심겨졌다. 엄마한테서 이상한 징후가 하나 감지됐는데 그것은 엄마가 물건 정리를 좀처럼 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이지혜(이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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