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주네 집은 201호 바로 맞은 편 202호에 사는 내 동갑내기 친구였다. 내가 애정하는 1순위 친구는 윗윗층에 사는 신혜였지만, 이름도 얼마나 예쁜가! 신혜. 우리 엄마랑 걔네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아 신혜랑 좀처럼 놀기는 어려웠다. 승주는 승혜라는 동생을 한 명 가지고 있었고 승주 아버지는 종이 공장에서 일하셨다. 그래서그런지 승주네 집에는 미농지가 수북히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미농지는 밑이 미세하게 비치는 기름종이 같은 것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랍장 위에는 미농지가 수북히 늘 쌓여있었다.
승주는 그 미농지 더미를 자랑스러워하며 미농지를 한 장 우아하게 집어들고는 집 안 곳곳을 누비며 춤을 추곤 했지만 내 눈에는 하나도 부러워할 것 없는 그저 미농지에 불과했다. 승주는 그 날도 어김없이 미농지를 바구니에서 한 장 들고 와서는 공주 그림을 그린다. 나는 옆에서 평소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농지의 질감을 살피고 접히지 않게 빳빳하게 펴가지고는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를 그 위에 대고 쓴다.
승주네는 이웃들이 들락거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승주네 202호는 낮에 늘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이웃 아줌마들이 서스름없이 “승주네”를 부르며 드나들었다. 그러면 호탕한 목소리로 승주네 아줌마는 흥이 가득한 목소리로 “아, 왜, 왔어?”하고 대답하곤 했다. 그치만 그 활짝 젖혀졌던 문도 승주네 아버지가 오시면 문이 닫혔다. 그 때면 나는 승주네서 맛있는 저녁식사와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승주를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또 내가 죽기보다도 더 싫은 쓰기 싫은 승주네 집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집이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물건도 그리 많지 않고 방안은 횡했으며 가구들은 조촐했다. 나는 어떻게 저런 적은 짐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 비하면 짐이 절반도 안되는 가난한 집이었다. 반면 우리집은 항상 문이 굳게 닫혀있다. 엄마는 “얼른 닫어”라고 내게 늘 문단속을 시켰다. 남이 볼까 나와 엄마는 매순간 마음을 졸이며 현관문을 얼른 닫으며 지냈다. 그런 우리집에 들어서면 우리 집은 물건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다.
-이지혜(이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