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같은 이야기
7시. 벌써 퇴근 시간이다.
평소라면 누군가 먼저 퇴근 신호를 줄 때까지 눈치를 본다. 하지만 오늘은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제일 먼저 빠져나왔다.
회사 사람들에겐 영화 예매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진도하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영화 예매를 같이 하게 되었지만, 정말로 영화를 함께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으으, 바보.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마음을 숨기고, 발걸음을 서둘러 옮겼다.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코앞이었다. 마음을 놓는 순간, 정류장에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괜스레 서두르는 마음에 당장 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자!’
진도하를 마주치지 않으려면 그게 최선이었다.
가방에 걸친 어깨끈을 단단히 붙잡고, 전력을 다해 버스를 향해 뛰었다. 퇴근길, 번화가.
사람들은 붐볐고, 저마다의 행선지를 향해 버스 정류장에는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뛰던 나는 그들 사이에 부딪혀, 버스를 코앞에 두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높은 구두를 신어서였는지, 아니면 무리하게 뛰어서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너무나도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괜찮아요?”
익숙한 목소리에 누군가 내 팔을 잡아끈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또 진도하였다.
“하… 네. 괜찮아요.”
“일어나 봐요. 어디 다친 데는 없고요?”
어느덧 버스 정류장 주변의 시선이 웅성이며 모여든다.
젊은 여자가 뛰다 넘어진 데 이어, 저 둘만의 청춘 드라마 같은 장면이 재밌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몹시 창피했다. 뛰다 넘어진 것도 물론이지만, 그 모든 모습을 진도하가 뒤에서 지켜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세를 고쳐잡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순간, 발등이 욱신거리며 고통이 느껴졌다.
“윽…!”
“안 되겠다. 우선 여기에 앉아요.”
진도하는 잔뜩 웅크린 나를 일으켜 정류장 한켠에 있는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아… 안 되는데.’
높은 구두 굽에 발이 부러진 건 아닌지 걱정하는 진도하와는 달리, 나는 하루 종일 스타킹을 신은 내 발에서 혹시 악취가 나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정말이다. 발등이 아프긴 했지만, 걷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더 나에게 집중할수록, 다른 이들의 시선이 더는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진짜 괜찮아요. 좀 쉬면 될 것 같아요.”
“알겠어요.”
꽤나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영화 시간 다 돼가는데… 안 보러 가도 돼요?”
분명 영화를 예매했다고 말했던 진도하는, 정작 보러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갈 거예요. 지원님하고 같이요.”
“네?”
“지원님, 영화 혼자 보기 도전한다면서요. 그 도전, 나도 같이 하려구요.”
다행히 영화가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여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 앉아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움직일 채비를 했다.
“이제 괜찮아요.”
괜찮다는 내 말에 진도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그럼 가요.”
결국 나는 진도하와 함께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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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으로 가는 길 내내, 진도하는 말없이 내 오른쪽 팔을 들어 지지해 주었다. 나 역시 그런 그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의지해 걷기 시작했다.
“네, 입장하세요.”
어느덧 예매한 영화의 입장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작은 상영관으로 안내받았다.
그 작은 상영관에는 영화 시작 10분 전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 둘뿐인 채 영화는 시작되었다.
“이 영화, 우리 둘뿐인가 봐요.”
멋쩍어진 내가 진도하에게 말을 건넨다.
“네, 제가 통으로 빌렸어요.”
“풋!”
말도 안 되는 진도하의 농담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실없는 그의 농담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잠시나마 눈이 마주쳤다.
그때 상영 시작을 알리는 영상이 시작되고, 커다란 스크린에 환한 빛이 비쳤다.
어두웠던 우리 사이가 밝아지자, 나를 보고 있는 진도하의 얼굴이 분명히 보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분명했다. 그리고 옅은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고요했던 순간이 너무 강렬해서, 나는 또 당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