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홀로 되기
나 홀로 다짐을 하던 그때, 진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먹겠습니다!”
씨익 웃는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잠시나마 비장하기까지 했던 나의 각오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의 널뛰기가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은 우선 밥부터 먹자!’
“식사는 괜찮으세요?”
진도하가 다정하게 물었다.
“네, 맛있어요. 도하님도 괜찮으세요?”
애매했던 내 마음의 방향이 정해져서일까,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그를 진짜 동료처럼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도하님? 아까 제가 중요한 거 가르쳐드린 거 잊으셨어요?”
“네? 어떤…”
“우린 지금 점심 데이트 중입니다.”
맙소사. 간신히 다잡은 마음이 후끈 달아오르며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이미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머리에서 심장이 뛴다.
“하하하하. 선배님, 알겠어요. 더 이상 장난 안 칠게요. 어서 식사하세요.”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약이 오르면서도 밉지 않다. 달아오른 얼굴을 더 이상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렵게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계산을 마친 나에게 진도하가 웃으며 인사했다.
“네, 저도요!”
나도 쿨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수없이 흔들렸던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함이었다.
‘끝이다. 이제 정말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이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점심을 마친 오후의 사무실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는 듯, 사무실엔 키보드 소리만이 가득했다. 나도 그들과 어울리려 애쓰며 아무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맡은 바 주어진 일’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선임이 없는 신입사원은 그저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볼 뿐이었다.
‘홀로서기를 해 보자.’
지금 이러고 있는 건 결국 내 홀로서기가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의 생활도,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결국은 자립심이 부족했던 탓이란 생각.
혼자서 씩씩하게 뭐든 해보고, 바쁜 남친을 기다리는 대신 나도 바쁘게 지냈다면 우린 아무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작은 인연에 흔들리는 마음 역시, 외로운 회사 생활 속에서 기대고 싶었던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당장 무엇부터 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 혼자 영화를 보자!’
생각해 보니, 26년 인생 동안 나는 혼자 영화를 본 적도, 밥을 먹은 적도, 심지어 쇼핑조차 혼자 해본 적이 없다. 항상 친구나 남자친구가 곁에 있었고, 그것도 안 되면 엄마가 함께했다.
순간, 내가 이렇게 의존적이고 미성숙한 사람이었나 싶었다. 이런 나를 바꾸기 위해 오늘은 그중 하나인 ‘혼자 영화 보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띠링–
사내 메신저가 울린 건 바로 그 순간, 예매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였다.
『다 보여요. 부장님께 이를 거예요』
또 진도하다.
『그게 아니고… 아니, 이제 끝났어요』
자꾸만 길어지려는 변명을 애써 멈췄다.
『영화 보려구요?』
『네』
『누구랑? 친구랑요?』
『아뇨, 혼자요』
『오~ 혼자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아뇨, 사실 오늘 처음이에요. 도전이에요』
『도전 ㅋㅋㅋ 뭐 좋은 거라고 도전까지 해요』
고민 끝에 결심한 나의 첫 도전이 누군가에겐 웃음거리일 수 있다니. 내심 뿔이 났다.
『네~ 그 도전, 저는 오늘 합니다!』
『하지 마요. 제가 같이 봐줄게요』
『네?!』
갑작스런 그의 말에 또 얼어붙고 만다.
『무슨 영화 보고 싶어요? 영화는 제가 결제할게요』
『왜요?』
『점심은 선배님이 사주셨잖아요. 영화는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오늘은 정말 혼자 영화 보고 싶어요』
『그럼 혼자 보세요. 전 그 옆자리 관람객 1 할게요』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기분이다. 준비한 일정이 틀어지면 당황스러운 법. 그 당황이란 건 곧 불편함과 어렵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이 당황스러움은 싫지 않다.
『그래서 오늘 ‘혼자 보기’ 첫 도전 영화는 뭡니까? 알려주면 그걸로 예매할게요』
사실 회사 근처는 큰 번화가라서, 퇴근 시간대 영화 예매는 쉽지 않았다. 하필 오늘은 금요일, 연인들이 가득한 ‘불금’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장 예매 가능한 영화는 단 한 편뿐.
어느 작은 극장에서 상영 중인, 이름 모를 배우들의 출연작.
『-그래서 우린 사랑이었다. 이거요』
바로 예매가 가능했던 유일한 영화를 알려주자, 진도하는 곧장 예약 완료 메시지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