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와 나의 점심시간
“자! 점심들 먹고 합시다.”
부장님의 점심 알림 소리가 반갑다. 평소 같으면 혼자 있기 위해 조용히 몸을 움츠릴 시간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진도하 씨와 약속된 점심 시간을 갖기 위해 몸을 움츠린다.
“네! 모두 즐거운 점심 시간 되세요.”
묘하게 선을 긋는 진도하 씨의 인사에 순간 멈칫한다. 늘 당황할 때마다 움츠러들기만 하는 나와 달리, 그는 언제나 무심하게 나타나 분명하게 행동한다. 요 며칠 사이, 그에 대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아, 그렇지. 우리 막내들은 점심 잘 먹어요.”
“네넵! 맛있는 식사 하세요.”
인사를 마친 진도하 씨가 어느새 내 자리 앞에 서 있다.
“저희도 이만 출발할까요?”
“네? 아, 네.”
서둘러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한 내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기 전에, 진도하 씨 앞을 가로질러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뭐 좋아하세요? 우리 뭐 먹을까요?”
앞만 보고 걷던 나를 그가 멈춰 세운다. 정신이 번쩍 든다.
‘맞다, 오늘 점심은 진도하 씨랑 함께였지.’
태연해지고 싶은데, 매번 그렇지 못하는 내 자신이 이젠 한심스럽다. 그날 밤 편의점 앞에서 무너진 평정심은, 이제 완전히 고장이 나버린 듯하다.
“휴…”
“응? 왜요? 컨디션 안 좋으세요?”
새어나온 한숨을 그가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아니에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지원 님이 추천해 주세요. 저보다 선배시잖아요.”
점심시간은 주로 나 혼자만의 요양 시간이었다. 커피나 편의점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던 내가, 그보다 뭘 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망설이기엔 아까운 점심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 어때요?”
눈에 띄는 아무 식당이나 가리켰고, 진도하 씨는 단번에 좋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곳은, 연인들이나 올 법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어서 오세요.”
직원의 인사에 진도하 씨가 먼저 나선다.
“두 명이요. 예약은 못 했습니다.”
“네, 자리는 있는데 뒷타임 예약이 있어서 식사 시간은 1시간 정도밖에 안 되세요. 괜찮으실까요?”
‘하필이면… 좀 더 둘러볼 걸…’ 후회가 밀려온다. 뒤늦게 주위를 살피려는 찰나, 진도하 씨가 먼저 말한다.
“네, 충분합니다. 그쵸? 지원 씨?”
‘지원 씨…??!!!’
늘 ‘지원 님’이라고 불렀던 그가 처음 부르는 어색한 호칭에, 나는 입만 벙긋댈 뿐이었다.
“네, 그럼 자리 안내해 드릴게요.”
정갈한 식기가 셋팅된 하얀 식탁. 평일 점심에 혼자선 절대 와볼 수 없는 그런 곳이다.
“뭐 좋아하세요?”
“음… 아무거나요.”
시선은 메뉴판에 머물지만, 마음은 다른 데 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럼 제가 알아서 주문하겠습니다.”
왠지 능숙해 보이는 진도하 씨가 주문을 마치고 나서야, 어색하게 펼쳤던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자주 오던 곳이에요? 사람 많네요.”
그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대답을 해도 거짓말이 될 테니까. 나는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다. 또 진도하 씨 앞에서 당황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화제를 돌리기로 선택 하였다.
“지원 씨~요?”
“하하하, 레스토랑에 왔잖아요. 우리도 남들처럼 좀 자연스러워지면 좋잖아요.”
“아, 네! 그렇군요. 오늘 중요한 걸 배웠네요.”
" 하하. 다행이네요. 중요한 걸 가르쳐 드릴 수 있어서요. 제가 가르쳐 드린 거 잊지 마세요."
잊지 말라는 농담 섞인 마지막 말이 괜스레 귓가에 남는다. 나는 혼자만 또 당황한다.
‘김칫국은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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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사랑이란 이름아래 생기는 골치 아픈 일은 질색이었다. CC들의 결말이 친구도 동기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로 끝나는 걸 수없이 봐왔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연인으로 엮이는 일이란 나에겐 피해야 할 골칫거리였다.
사랑은 언제나 끝이 있고, 그 끝은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나는 그 사실이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서 연인이 된다거나, 동료에서 연인이 되는 일 따위는 한번도 일어 난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회사에 겨우 적응해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와 얽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순 없다. 그게 사실이든 소문이든, 어떤 형태든 말이다.
이내 주문 한 음식이 나왔다. 앞에 놓여진 반짝이는 식기류를 눈으로 쫒으며 다짐한다.
'더 이상 엮이지 말자. 그동안의 보답을 오늘 식사로 마무리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