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벚꽃
술기운 덕분인가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기분 좋은 꿈을 꾼 것도 같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꿈 덕분인 걸까? 기분 좋은 출근길이다. 어제만 떠올리면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게 회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어제 잘 들어갔어?'
친구 혜린이 이다. 갑작스러운 회식소식에 친구 혜린이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응, 나 어제 새벽에 집에 들어옴'
'헐, 뭐야! 재미있었나 봐?'
재미라,,, 웃음이 났던 건 분명하니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음,,, 뭐 비슷하달까?'
'뭔 일이야! 만나서 얘기해야겠다.'
'응 ㅋㅋ 너도 출근 잘하고, 연락할게'
혜린이와 메시지를 마칠 즈음 어제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새벽녘 요구르트를 나눠 마신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어야 하겠지, 어느새 입가에 번진 미소에 다시금 얼굴이 붉어지려한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홀로 버스에 앉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출근길, 어느새 벚꽃이 만개하였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온 몸으로 봄을 알리고 있었다.
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지하철을 탔었다. 달리던 버스가 고장이 나기만을 바랬던 날도 있었다. 지하철이 갑자기 멈추기만을 바래기도 했었다. 그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을 난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이어폰을 꽂고 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자연스레 눈이 감길 무렵, "띠딩" 메시지가 왔다.
"출근 잘하고 계세요?"
진도하이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문자에 난 황급히 음악부터 껐다. 나는 여전히 그가 당황스럽고 이런 내 모습이 들킬까 부끄럽기만 하다.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나는 프로다.
'직장 동료다. 오버하지 말자.'
마음을 다 잡고 메시지를 보낸다.
'네, 출근 잘하고 계시죠?'
'네, 근데 너무 피곤해요. 뭐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뭐라도 마셔야죠. 이오! 오늘 제가 쏠께요'
'ㅋㅋㅋ 이오 좋죠!. 감사합니다. 그럼 회사 앞 편의점에서 기다릴게요.'
이런! 엉겁결에 출근길에서부터 약속을 잡았다. 기다린다니.. 이오라니.. 다잡은 마음과 다르게 엉성한 짓을 해 버리고 말았다. 괜스레 창 틈으로 불어 온 봄 바람을 탓 해 본다.
'봄이 문제다. 이넘의 봄이.'
괜스레 발걸음을 서둘러 본다.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진도하 씨가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회사 근처 편의점 앞에는 파란색의 커다란 파라솔이 펼쳐 있는 테이블이 하나 있다. 여태껏 회사 동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한 번도 앉아 보지 못했던 테이블이었다. 그곳에 진도하가 앉아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뭐 드셨어요?"
"아뇨, 선배님이 사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네. 어서 사고 들어가죠."
음료수를 고르러 들어가는 내내 진도하가 뒤를 따라다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멀었는지, 택시를 얼마나 잡기 힘들었는지 등등 그는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며 나를 따라다녔다. 어깨너머로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 나는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와 곤욕이었다.
"하하 알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오 사주러 왔잖아요."
"아뇨, 이걸로는 안돼요. 오늘 점심도 사주세요."
"네??! 진도하 씨 무서운 사람이네."
"어제 택시 아저씨가 더 무서웠어요."
"하하하하 알겠어요. 점심 사 줄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어서 출근하죠 선배님!"
기분 좋게 음료를 나눠 들고 나오는 길, 당한 듯한 느낌도 잠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진도하와 점심이라.. 갑작스러운 약속에 조금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굴었다. 나는 그에게 직장 동료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오! 막내들! 어제 조심히 잘 들어갔어요?"
"네! 제가 잘 모셔드렸습니다."
"그래그래 잘했어. 고생했어요. 오늘 해장해야지?"
"네! 지원님께서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해서요. 저는 오늘 점심은 따로 먹겠습니다."
'에어에엑!'
이렇게나 공식적으로 점심선약을 공표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고 도망치 듯 나오면 될 일을.. 진도 하는 융통성 없이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와아! 그래? 좋지 좋지!"
"네, 감사합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후다닥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묵묵 한 선배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벚꽃이 가득 폈어. 그렇지?"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