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

- 엔딩 크레딧

by 그래

영화는 잔잔했다. 흔한 로맨스 영화였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흔하지 않았다. 아니, 흔할 수 없었다. 사실 영화야 어찌 됐든, 난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안 돼, 안 돼. 그래, 안 돼!’

짧고 강렬했던 상영관의 빛은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컴컴한 상영관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갈까요?”

“네.”

“걸을 수 있겠어요?”

“네, 이제 괜찮아요.”

상영관을 나오니 다시 환하다. 밝은 곳에서 마주한 진도하는 어쩐지 조금 전보다 말수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상영관을 나서자 금요일 밤을 즐기는 젊은 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얼굴을 마주 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유독 우리 둘만 어색하고 뻣뻣했다.




“오늘 감사했어요.”

이제는 헤어져야겠다고 마음먹은 내가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라?’

사실 뭔가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인사하고 끝날 줄은 몰랐다. 혹시나 저녁이라도 먹자는 말이 나올까봐 괜히 혼자 낯부끄러웠다.

서둘러 마음을 추스르고 애써 태연하게 돌아섰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생각해보면, 진도하와 단둘이 있던 중에 내가 집으로 혼자 가는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어느새 그가 익숙해져 버린 걸까. 어쩌면 나는 내심, 그가 나와 조금 더 함께 있길 바랐던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이 마음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디야?』

혜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콜?』

혜린은 묻지도 않고 내 마음을 단번에 알아챈다.

『응, 나 30분 있으면 도착함』

『ㅇㅋ. 거기서 보자.』

나의 오랜 동네 친구는 자연스럽게 아지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 인사는 생략한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모! 저희 생맥 두 잔이랑, 치킨 하나 주세요.”

혜린과 나는 가볍게 맥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내 기본 안주와 살얼음이 낀 생맥주 두 잔이 나왔다.

“건배.”

말없이 잔을 부딪히고,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신다.

맥주가 목으로 넘어가는 길처럼, 답답했던 가슴의 체증도 함께 내려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야?”

“너한텐 정말 감출 수가 없나 봐.”

“하하, 감추긴 뭘 감춰. 나한테 감추면 안 되지.”

회식 이후 진도하의 존재를 알게 된 혜린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내심 뭔가 있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 남자 좀 소개시켜줘라.”

“응??! 정말?”

“응, 진짜로. 주변에 혹시 괜찮은 사람 없어?”

“너… 마음에 드는 사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었어. 그리고 안 돼. 절대 안 돼.”

“뭐가 안 돼?”

“야! 사내커플이 말이 되냐. 끔찍해. 절대 안 돼.”

“오호라~ 사내커플! 거기까지 진도가 나간 거야?”


진도라… 우리 사이에 진도랄 게 있었나?

혜린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고작 두어 번 우연히 부딪힌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도라기엔, 우린 너무 아무것도 없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저 나 혼자 호들갑 떠는 감정의 널뛰기였을 뿐이다.


“나 아무래도 오빠랑 헤어지고, 아직 마음을 못 잡나 봐.”

나는 이 모든 감정을 이별의 후유증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아직 진정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래, 알겠어.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거잖아. 기다려봐, 내가 주변에 한 번 찾아볼게.”

“고마워. 너밖에 없다, 정말.”




그리고 며칠 후, 퇴근을 준비하던 중 혜린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칼퇴할 수 있어? 집 근처에서 잠깐 볼래? A 오빠가 너 한 번 만나보고 싶대.』


며칠 전, 혜린에게 흘리듯 말했던 소개팅이 준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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