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위의 카페; 흑역사

잃고 나야 알게 된다

by 이지숲

그 사람을 11년 동안 알고 지냈다.

대학 선배였고,

오래도록 편했던 사람.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그는 너무 다정했다.


많은 연애에 상처받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감정은 화려했지만 책임은 없던 사람들.

나는 무너져 있었고,

그는 나를 다정하게 붙잡았다.


그는 커피 사업을 했다.

나는 늘, 카페를 하고 싶어 했다.

그건 어릴 적부터 오래 품어온 나의 꿈이었다.


“우리 결혼할 거니까,

결혼자금으로 시작하면 되지.”

“너는 그냥 와서 시작만 해.

내가 다 준비할게.”


나는 그 말들을

사랑이라 믿었다.

운명처럼 연결된 꿈이라 착각했다.


그는 내 욕망을 알고 있었고, 그걸 건드렸다.


내 가게.

내 이름이 적힌 간판.

내 공간.

그는 정확히,

내가 가장 약한 지점을 알아채고 있었다.


그의 말은 따뜻했지만,

사랑이 아니라 설계된 유혹이었다.


그 카페는

모래 위에 세운 왕국이었다.


그 안에 든 것들은

모두 빌려 쓴 것들이었다.

돈도, 공간도, 신용도.

심지어 감정마저도.


나는 그가 착한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벽을 부수는 사람이었고,

길 한가운데서 나를 두고 가는 사람이었고,

내가 싫어지는 사람으로 나를 바꿔놓는 사람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울었고,

그의 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울부짖고, 매달리고,

내가 평생 부끄러워할 모습으로 무너졌다.


그는 내 안의 분노를 끄집어냈고,

나는 그 앞에서

작고 추하고, 나조차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는 떠났다.

사랑도, 돈도, 사람도 모두 잃었다.


그런데,

그 시간은 끝내

내게 하나의 문장을 남겼다.


사랑은 나를 잃어가며 견디는 일이 아니다.


그걸 나는, 나를 잃고 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