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키스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지난 늦가을, 단풍이 만연한 뉴욕 여행 중 내가 가장 기대했던 일정은 노이에 갈러리(Neue Galerie) 방문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이나 MOMA, 휘트니 뮤지엄, 구겐하임 등등 뉴욕은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지만, 유럽 풍 멋진 건물이 뉴욕 중심에 자리 잡은 이 고풍스러운 공간에서 황금빛 화가 클림트의 작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을 뉴욕을 떠나기 전날 즐기기로 했다. 꽤 비쌌던 입장료를 지불하면 저렇게 옷에 부착하는 핀을 준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클림트의 작품은 이곳에 많지 않다. 하지만 한 작품으로도 충분하다. 그 유명한 [키스]와 함께 클림트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상당히 적막했던 공간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마침 당시 개봉했었던 영화 [우먼 인 골드]를 통해 익혔던 아델레의 조카가 나치, 그 당시 정부에게 빼앗겼던 그림을 되찾아 오는 과정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름다운 오후였다.
주변을 돌아보면 클림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복제품으로, 상업제품으로 재탄생하였다. 그는 특별히 여성의 관능적인 모습과 성을 아름답게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다. 그만큼 그의 주변에는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사후 "우리 아기 아빠는 클림트"라고 소송을 제기한 건만 14건이라고 하니,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의 숫자는 몇 배에 달할 것이다. 실제로 그의 집에는 수많은 모델들이 동시에 거주하며 지난밤 받았던 키스마크까지 공유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클림트는 늘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을 관찰하고 뭐, 느끼면서 우리에게 걸작들을 남겼다. 예술의 이름으로 이해하기에도 조금은 다사다난했던 클림트의 여자관계 속에서도 조금은 더 특별한 그녀들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1. 아델르 블로흐-바우어
아델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클림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인으로 공식적으로 남겨진 기록은 없으나 그의 연인이 분명했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여자관계 복잡한 남자답게 클림트는 본인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겨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나이 많은 남편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가 클림트에게 자신의 아내의 초상을 부탁하여 탄생한 작품이 그때까지의 통념을 깨버린 [유디트]였다.
남편이 자신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초상화를 거금을 주고 의뢰했는데 성서에 등장하는 유디트를 모티브로 저렇게 야릿한 표정으로 탄생했을 때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그림을 통해 클림트와 아델레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쉽게 의심할 수 있지만 당대 빈에서는 예술가와 유부녀에 대한 불륜에 상당히 관대했다고 하니 정말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유디트는 성서의 인물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인하여 그 목을 잘라가지고 돌아오는 인물로 클림트 이전에도 많은 화가들에 의해 재탄생하였는데 주로 살해 장면을 그린 용감한 유디트를 표현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자른 목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영웅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뭔가 본인의 즐거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관능적인 여인의 모습이다. 남의 여자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여인의 내면의 행복을 이렇게라도 표현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쨌든 당혹스러웠던 남편이 다시 의뢰해서 탄생한 작품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인데 주목할 것은 유디트 목에 있는 목걸이가 그대로 초상화로 옮겨갔다는 점이다(부자 남편의 선물). 해방된 유디트와 금덩이에 둘러 쌓여있긴 하지만 넋 나간 듯한 아델레는 많이 다르다. 이때까지 정분 관계가 유지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의 목을 들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몇 년 사이에 화려한 치장 안에 갇혀서 몸까지 뒤틀려 버린 채 그려진 것은 책임까지 지진 않았지만 한때 사랑했던 그녀를 사회의 통념과 나이 많은 남편, 답답한 현실에서 구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아델레의 남편은 또 한 번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하는데, 이 남편도 변태 같은 것이 자기 아내와 정분이 났었던 화가한테 자꾸 작품을 의뢰했던 이유가 뭘까. 내 돈과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우월성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클림트였겠지만. 두 번째 초상화는 그가 한참 금에서 동양이나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를 시도하던 시기라 번쩍거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장식 속에 그녀를 가둬놓았다.
2. 마리 침머만
친자소송을 진행했던 14명 외에도 클림트 생전에 본인의 자식이라고 인정했던 자식들도 몇 명 있다. 그중 클림트와 두 명의 아들을 얻은 모델 마리 침머만은 그냥 스쳐 지나간 여자 중 하나라고 하기에는 클림트에게 특별했다. 클림트의 오픈 하우스에서 한 남자를 두고 서로를 인정하며 지냈던 여자들과는 달리 미찌라고 불렸던 이 여인에게 그는 조금은 더 각별했다. 뒤에 다룰 그의 인생의 동반자 에밀리에게도 미찌와의 관계는 들키지 않으려고 애쓸 만큼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 아들을 두 명이나 낳고서도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는 않았던 참 몹쓸 놈이 분명하지만, 다른 여자들하고는 다르게 먼저 클림트가 사랑을 표현하고 애교도 부렸다고 한다. 두 번째 아들은 한 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는데 그때 탄생한 작품이 [희망]이다. 여성이 가장 축복받아야 할 시기에 어두운 곳에 해골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에서 미찌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죄책감이 표현된 작품이다.
3. 에밀리 플뢰게
드디어 등장한 에밀리, 그녀는 클림트만큼이나 관계에 대해서 독특했다. 처제의 동생이었던 에밀리는 삼십 년가량 클림트에게 단순한 여자 이상이었다. 당시 흔하지 않았던 여성 사업가였던 에밀리는 클림트와 평생 연인관계를 유지하지만 아이를 얻은 것도 아니고 결혼은 당연히 안 했으며, 사후 그와 주고받았던 수많은 서신들을 불태워 버리기도 한다. 클림트의 곁을 오랫동안 머문 뮤즈인 것은 분명한데, 자신들의 뮤즈들을 수만 번 반복했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클림트는 달랑 4장의 초상화만 남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1902년 작품은 그가 수도 없이 그려온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성공한 CEO의 인터뷰에 실릴 것만 같은 모습으로 그려냈다. 그나마 모델이 별로 마음에도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클림트가 쓰러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에밀리를 불러와" 였을 만큼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자였던 것은 분명한데, 이 언니는 삼십여 년간 그를 스쳐 지나간 여자들과 자식들을 보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몇십 년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결혼을 요구하거나 책임감으로 그를 옭아매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사업에 열중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몇천 장은 될법한 그들의 삼십 년간의 흔적들이 어찌 보면 나중에 큰 자산이 되었을 법도 한데 쿨하게 태워버린다. 클림트 사후 그의 자손들에게 일일이 자산을 분배할 만큼 통도 크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둘은 육체적 관계가 전혀 없었던 플라토닉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모든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에로틱하게 그려냈던 화가와 사돈처녀의 첫 만남은 늘 그러했듯 관능적 작품으로 시작하긴 했는데 당최 클림트의 뜻대로 끈적하게 표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내 몸하나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답답한 상황을 클림트는 어쩌면 30여 년간 겪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여자들이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매력남 클림트가 남긴 몇 안 되는 흔적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에밀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에게는 정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뿐이다."
사랑한다면서 관능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의 성적인 아름다움을 평생 관찰하며 몸소 실현한 클림트랑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사실 남녀관계에서의 성적인 행위와 교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본능이다. 한편으로는 저 부분에서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면 사랑은 변한다. 유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심장까지 뒤흔드는 강렬함은 사라진다. 에밀리는 클림트에게 손대면 톡 터질 수는 있으나 그다음에 무엇이 흘러내릴지 몰라 두려운, 그만큼 깨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저항하기 힘든 사랑의 존재로 남겨놓고 싶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인 [키스]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대부분이 모델은 에밀리라고 인정하고 있고, 여자를 온통 감싸고 있는 남자가 그녀를 제압했다, 여자는 목이 뒤틀렸지만 행복하다, 무릎을 꿇었는데 그게 절벽 위 아슬아슬하다, 수많은 패턴들은 성의 심벌이다 등등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비전문가이자 클림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냥 30년간 꿈꿔왔던 그의 순결한 사랑을 행복한 빛 속에 담았다고 느끼고 싶다.
올해는 클림트 사망 100주년으로 전 세계에서 이 위대한 예술가의 인생과 작품들을 기리고 있다. 단순히 수많은 여자들에 대한 관계로 이 천재를 천박하게 포장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수많은 걸작들과 현대 미술사에 끼친 막대한 영향과 함께 자신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 함께 빛남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