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쿨 자면서 편안하게 떠난 천사
2003년 12월 10일 경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심바.
만 17년동안 어릴때 부터 눈병과 피부병을 시작으로 신장종양, 파보장염, 췌장염, 면역매개성용혈성빈혈(IMHA), 고관절, 디스크, 중이염 & 내이염, 방광결석, 담낭크랙, 신장병, 심장병까지 온갖 질병들을 씩씩하게 이겨냈다. 그만큼 병원을 정말 자주 다니기는 했지만 아무리 아픈 상태로 가도 기적처럼 잘 이겨냈었고, 나는 심바를 하루에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되었다.
최근 다리가 불편해지고 인지장애가 생긴 심바는 9월경부터 자다가 소변실수를 종종하기 시작했고 횟수는 점점 늘었기 때문에 나는 심바랑 아주 가깝게 자기 시작했다.1살때부터 16살까지는 내 침대 반을 차지하고 절대 혼자자려고 안했는데 올해부터 갑자기 독립심이 생겼는지 자기 침대에서 자기 이불을 덥고 자기 시작했다.
새벽에 오줌이 마려우면 정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는 새벽에 한두번 일어나는건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혹시 못들을지도 모르니 내 침대와 심바 침대를 최대한 가깝게 해놓고. 자기 몸에 뭐가 묻으면 그게 정말 맛있는 간식이라도 엄청 짜증을 내는 아이이기에 오줌이 다리에 묻으면 난리가 났다. 새벽 2시건 4시건 뒷다리 샤워도 당연한 루틴이 되어버렸다.
2020년 12월 14일 월요일
새벽 4시, 심바가 날 깨우지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심바를 바라보니 어제 병원다녀와서 피곤했는지 이불속에 폭 들어가 자고 있었다. 나도 가볍게 다시 잠들었다. 곧 심바가 일어나서 오줌 싸겠다고 날 깨울테니.
아침 7시, 심바는 왠일로 아직도 자고 있다. 어제 많이 피곤했구나. 나도 일어나서 새벽배송 온 빵도 자르고 커피원두도 드르륵 갈기 시작했다. 30분 쯤 지나서 이젠 약을 먹이고 밥도 먹여야 해서 깨우러 갔다.
이불을 들어보며 아이를 불렀는데 이불에 똥이 묻어있었다. 요즘 밥을 워낙 잘먹어서 건강한 똥을 자주 보긴 했지만 왠일로 안일어났지. 많이 피곤했구나. 이불을 세탁기에 먼저 넣고 다시 심바를 깨우러 갔는데 오줌도 흥건했다. 심바 많이 피곤했구나 일어나~ 하며 아이를 들어올렸는데 그대로 목이 툭 떨어졌다. 다리가 딱딱했다. 안그래도 큰눈을 더 크게 뜨고 있고 혀도 아주 살짹 빼꼼 나와 있었다.
그 순간 울었는지 심바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로는 심바가 떠났구나 알고 있었지만 몸은 벌써 심바를 큰 수건에 싸서 차로 향하고 있었다.
심바가 바로 전날 건강한 수치를 확인했던 병원으로 갔다.
얘 죽은거 맞아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나를 당직선생님은 최대한 차분하게 위로의 말씀과
몸 상태로 봐서 한시간 정도 된것 같다고, 편안하게 자다가 갔다고 하셨다.
매일 새벽에 큰 소리로 나 오줌마려를 외치던 네가 끙소리 한번 없이 이렇게 떠났다고?
병원에서 소개한 장례식장과 동생에게 각각 연락을 하고 멍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 몸에 뭐가 묻는걸 정말 싫어하는 심바니까 우선 깨끗하게 씻어주기로 했다.
이게 마지막 목욕이 될줄이야. 눈물이랑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랑 마구 섞이기 시작했다.
심바가 좋아하는 쿠션위에 심바를 눕히고 좋아하는 이불을 살짝 덮어줬다가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고 해서
문을 열었다. 영하 10도 가까운 아침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이를 너무 무서워 했던 아이었기에 열심히 브러시로 한올한올 빗어주기 시작했다.
몸도 점점 차가워지는것 같아서 열심히 주물러주고 눈도 여러번 시도 끝에 감겼다.
그러기를 두시간. 심바 털에서 윤기가 돈다. 편안하게 잠든 얼굴이 좀있다가 일어나서 밥달라고 할것 같은데.
장례식장으로 떠날 시간이 되어 다시 심바를 새로운 타올에 곱게 싸고 함께 화장해 줄 간식들과 장난감을 몇개 챙겼다. 아이는 내 품에서도 자꾸 축축 처진다. 미친듯 안고 싶지만 혹시 부러질까 조심스럽다.
가는 길 너무 편안한 모습에 아주 조금 빼꼼한 혀가 귀여워서 운전중인 동생과 농담도 몇마디 해본다.
날은 춥지만 이렇게 화창한 날. 너답게 정말 깔끔하게 가는구나.
이런 날이 급하게 올것 같지 않은 최근 심바 컨디션이었기에 미리 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장례식장 직원분들은 너무나도 정중했고 배려심 깊었다.
심바가 죽기 며칠전 많이 아팠거나 밥도 안먹었다면(죽기 몇시간 전에 간식까지 싹 비우신 분)
나도 지친 얼굴로 눈물이 났겠지만 아직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 못하는 상태였는데
염을 한다고 아이를 데려가시는 직원분 뒷모습 사이로 심바 귀가 귀엽게 빼꼼 보인다.
평소 성격처럼 건강한 똥과 오줌만 싸고 몇시간의 걸친 마사지와 케어를 받고 온 우리 여왕님은
염도 십분이 채 안되는 시간 안에 끝나고 추모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까지 잘 누워있던 쿠션을 깔고 그 위에서 꿀잠을 자고 있는 심바.
이게 마지막인건 알지만 자꾸 만지면 만질 수록, 뽀뽀하면 할수록 더 슬퍼졌다.
차가운 코와 입, 굳어버린 발과 다리, 내가 좋아했던 심바의 털에 여러번 뽀뽀했다.
이게 열번이던 백번이던 정말 마지막이다.
동생이 심바에게 뽀뽀하며 아직 얼굴에서 심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추모 시간은 제한은 없었지만 보고 있으면 있을 수록 보내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밥 잘먹고 자다가 편하게 본인의 견생을 마무리했고, 너무나도 이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이 아이는 정말 내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 하라고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린걸까.
계속 보고 있어도 슬픔은 덜어질것 같지 않아서 생각보다 짧게 추모 시간을 끝냈다.
쿠션은 내가 집에 가져가기로 하고 마지막 메세지를 작은 관에 쓰는데
어쩐지 심바에게는 슬픈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만 17년간 내가 심바에게 불렀던 별명들이 더 많았겠지만 순간 기억나는 말만 적었다.
그렇게 심바는 화장실로 갔고 유리벽 넘어 다시 심바의 작은 귀가 보였다.
저 귀가 오늘따라 왜이렇게 사랑스러운지.
화장중이라는 불이 들어오자마자 다리 힘이 풀린다.
한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울고 싶지 않아서 한시간 내내 급한 회사일을 처리했다.
너무 멀쩡한 목소리로 클라이언트랑 통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직원분이 다시 오셔서 유골을 확인하시면 그 후 분쇄를 한다고 하는데 심바의 작은 유골을 보면 난 미쳐버릴것이 분명하다. 알아서 그냥 해주십사 부탁했다. 직원분은 마스크 넘어 따뜻한 눈빛으로 알겠다고 하셨다.
몇분 후 심바는 가루가 되어 돌아왔고 따뜻했다.
난 하얀 가루만 올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핑크색 검정색이 섞여있다. 순간 너무 바보같이 이건 발톱인가요? 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은 안하셨다. 유골함에 담아 집에 오는데 따뜻했으면 더 슬펐을것 같다. 사실 내 품에 안은 순간도 차가웠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왔더니 여기저기 심바의 마지막 순간이 묻어있다. 마지막으로 쓴 배변패드와 밥그릇, 어제 새로 받아온 약봉지들, 어제 마지막까지 싹싹 먹고 조금 남아있는 사료. 보고 있어도 괴롭고 내 마음대로 치워버리는 것도 매정한 것 같아서 한시간을 망설이다가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다. 심바의 흔적이 있던 없던 슬픈건 똑같다.
아직 실감이 안나서일까. 편안히 갔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추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슬픈 마음을 억지로 빨리 떨쳐버리려고 노력 안하기로 했다. 난 더 슬퍼도 되고 더 아파해도 되니까
심바만 지금 편안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