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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16. 2020

감사 인사

심바의 선생님들

심바는 우리집에 온 그 순간부터 밥을 안먹었다.

강아지에 대해 무지했던 난 그냥 집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친절한 선생님은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런거니 이거저거 먹여보자 기다려 주자 말씀하셨고

거의 매일 울상이 되어 찾아가는 나에게 온갖 샘플 사료와 간식들을 나눠주셨다.

1kg의 몸이 800g이 되었을때에는 긴급하게 수액처방도 해주시고, 2주동안 반응이 없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씀하셨다.


"KFC에서 가장 양념 안뭍은 닭가슴살을 아주 조금만 줘보세요."

그날 이후 심바는 먹을 수 있는것 없는것 다 먹기 시작했고,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자라있었다.


사실 심바는 어릴때 부터 너무나도 아픈곳이 많았다. 피부병은 늘 달고 살았고, 장염도 여러번, 췌장염, 종양, 결석 등등. 나중에는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IMHA까지. 마지막에는 심장병, 신장, 담낭, 간 등등 멀쩡한 기관은 글쎄 장 정도? (마지막날까지 아주 건강하게 싸긴 했으니)


아플때도 몽글몽글 귀여웠던 이 녀석.


오늘은 심바를 돌봐주셨던 선생님 두분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KFC 닭가슴살을 속삭이듯 권해주신 선생님은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아주 오랜 기간 심바를 봐주셨다.

저 13년동안 정말 심바는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선생님 손에서 기적처럼 고비를 넘겼다.

2016년 원래 전문 분야이신 안과병원으로 재정비하시면서 심바는 끝까지 돌봐주시겠다고 했다.

어쩔까 고민 중이었던 어느날  새벽에 심바가 발작이 왔다. 집근처 24시간 병원으로 갔더니 뇌질환일 가능성이 높다는 무서운 소식에  MRI를 포함한 여러가지 검사를 엉엉울며 시작했다. 결국, 늘 앓고 있던 중이염이 좀 깊게 발생하여 잠시 신경을 건드려서 아이가 놀란것이라고 한다. 단순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너무 다행스러운 결과이긴 했지만 이젠 24시간 병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선생님의 말씀은 감사했지만 전문병원에 괜히 민폐 끼치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선생님은 동물의 권리와 생명 존중에 남다른 철학을 가지신 분이고, 우리의 반려견 문화보다 제도나 의식이 아직은 한참 앞서있는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아직 많은 보안이 필요한 한국에서 가능한 모든  부분을 시도하려고 노력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심바가 미용을 하거나 주사를 맞고 있는 잠시 비는 시간에 동물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우리의 의식 등에 대해 간간히 나누었던 대화들은 내가 심바를 대하는 마음 뿐 아니라 동물과 생명에 대한 많은 인식을 새롭게 해주셨다.




심바의 마지막 선생님은 그 당시 옮겨갔던 24시간 병원이 문을 닫게 되어 자연스럽게 길건너 24시간 병원으로 옮겨가게 된 병원에서 만났다. 노견인데 병원 옮기는게 많이 민감하셨을텐데 믿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신 선생님과의 인연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곳에서 심바는 정말 최상의 치료를 받았던것 같다. 안그래도 요구사항 많고 질문 많은 보호자인 나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셨고, 점점 약해져갈 수 밖에 없는 심바를 위해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절한 처방과 사랑을 주셨다. 이곳에서 몇달간 심바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아픈 곳이 많아 맛없는 처방식을 깨작깨작 먹는 심바때문에 고민하는 나에게, 이제는 수치들이 많이 안정됬으니 맛있는것도 먹여보자고 권하시며 "전 그렇게 생각해요. 처방식이라는것도 결국 먹어야 약이고, 아이들이 맛없는걸 조금씩 먹고 힘든게 나은지 아니면 맛있는것 마음껏 먹고 행복한게 중요한지. 약으로 컨트롤이 되고 있으니 우리 한번 시도해봐요." 심바는 맛있는것도 몇달간 잔뜩 먹고 좋은 수치를 유지하였다.


심바가 죽기 하루 전, 정기 검진 수치가 건강한 어린 강아지처럼 모두 정상이었고, 약을 많이 먹어야 해서 항상 빈캡슐이 많이 필요했던 나에게 매번 번거로우실테니 따로 주문했다며 알약 1000개를 내미셨다. 

"이걸로 5개월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겠죠?"

물론 한알도 못써보고 떠났지만,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달콤한 향기가 났었던 심바가 골랐을 법한 선물



두분께 각각 감사 말씀을 전했다.

"선생님, 저희집에 온 날 부터 13년이란 긴 시간동안 튼튼하게 만들어 주신  덕분에  심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저희와 함께했고 마지막 순간에도 쿨쿨 자고 떠났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 간직하고 심바를 추억하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심바는 편안한 마지막 해를 보냈고 떠나는 순간까지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어요. 사랑과 정성으로 저희 아이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동물 친구들과 보호자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세요. 감사합니다"


6시가 지나서 옛날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정말 약한 아이었는데 오랫동안 잘 지내줘서 기특하다고. 이쁘게 잘 갔으니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천천히 이별하라고 해주셨다.

따뜻한 통화를 한 후 심바의 마지막 병원으로 향했다. 몇달간 나를 지겹도로 마주치셨던 리셉션 직원분이 나를 보자마자 울먹하신다. 차마 선생님 얼굴까지 보면 나도 너무 울것 같아서 선물과 편지만 전달드리고 왔다.

사실 어제 전화를 따로 주셔서 위로 말씀을 해주시는데 선생님도 목소리가 너무 안좋으시고 나도 너무 많이 울어서 힘들것 같았다.


카톡보고 또 오열. 어쩔 수 없이 시간은 걸릴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선생님들 덕분에 나도 심바도 참 편안했고 따뜻했다.

물론 병원비는 17년간 병원 옆 마세라티 매장에서 조금 더 보태면 한대 살 수 있는 비용이 들기는 했지만.

하루 하루 따뜻한 마음으로 오늘도 지나간다.

심바, 혹시 천국 가는 길에 피곤해서 쿨쿨 잠들어 있진 않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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