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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 young Dec 21. 2020

심바, 손!

엄밀히 따지면 발

이별 후 오늘은 딱 일주일 되는 날이다.

나도 모르게 손톱을 다 뜯어놓고 잠들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곧잘 하는 손!을 아이는 끝까지 배우지 못했다.

내가 슬쩍 손이라도 잡으면 쌀알같이 작은 까만 발톱으로 나를 간지러댔다.

몸이 불편해진후에는 손만 가까이 가도 귀찮아 했지만. 오늘따라 아이의 손이 자꾸 생각난다.


퇴근 후 나는 8년여간 다닌 집앞 네일샵으로 향했다.

이곳은 8년동안 심바랑 한달에 한두번은 꼭 들렀던 곳이다. 일하시는 분들도 다 심바를 너무 이뻐해 주셨었고, 심바도 산책길에 자기 발로 이쪽으로 방향을 틀어 문을 비집고 들어가 안녕 안녕 자기 방식으로 인사를 하던 곳이다.


컬러판만 보면 자기가 고를것처럼 달려들다 그 옆에서 항상 잠들었었다


200번은 넘게 갔을 이곳에 가면 아이는 내 무릎에서 조용히 기다리거나(정확히 말하면 너무 편하게 잠자거나) 내 손에 턱을 걸치고 네일 기계속에 코를 넣어보거나 조금 더 심심해지면 가게 안 여러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대부분 조용히 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마치고 일어나며 헛, 강아지가 있었네? 어쩌면 이렇게 얌전하고 조용해요? 라고 사랑스럽게 아이를 바라보았다.


언니, 빨리 끝내고 집에 가면 안될까.


올해들어 아이는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찡찡거리고 몸을 버둥거리며 내 무릎을 탈출하고 싶어했다. 그러다 보니 나뿐 아니라 손톱을 만져주시는 분도 마음이 급해지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자세가 되면 편해질때까지 으르렁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묘한 자세로 다리를 벌벌떨며 반쯤 걸터앉을 수 밖에 없었고. 여름부터는 한번은 데려가고 한번은 집에 놔둘 수 밖에 없었다. 그때도 아이가 점점 약해지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 이후로 급격하게 진행된 인지장애와 아픈 다리 등 다양한 증상들로 불편했던것 같다. 그리고 사실  자기 손발 꾸미는 것도 아닌데 사람보다 몇백배는 발달한 후각에 냄새가 엄청 싫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미안해진다. 엄마 파마하러 끌려가서 몇시간이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그 기억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혼자 가면 언제나 그러하듯 심바는 집에 있냐고 물어보실텐데. 그럼 나는 또 마스크 넘어로 훌쩍거릴거고. 다행스럽게 오늘은 사람이 많아 모두 바쁘다. 이럴땐 마스크가 참 좋다. 목도리와 마스크에 푹 숨어서 그냥 손만 내밀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오늘 나를 담당하실 분은 몇달 전 새롭게 취직하신 어린  분이다.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시는지 심바만 보면 돌고래 목소리로 반겨주셨고, 한시간 내내 강아지 이야기만 하신다.

단점은 너무너무 꼼꼼하신 나머지 느리시다는거다. 아이를 혼자 집에 놔두고 나 혼자 네일을 받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여 빨리 대충하고 가고 싶어질때가 많았다. 실제로 빨리 해달라고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얘기한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 아직 아무도 아이는 어디있냐고 묻지 못할만큼 바쁘다. 이분도 오늘은 왠일인지 별 말씀이 없다.

여전히 느리다. 안그래도 요즘 감정이 오락가락하는데 이러다가 내가 짜증과 슬픔에 뒤섞인 울음이라도 터지면 어쩌지 걱정이 된다. 갑자기 훅 들어온다. "심바는 하루에 밥 몇끼 먹어요?"


윽. 오늘 겨우겨우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졌다. 아이 떠났다는 말을 작게 내뱉자 작은 공간의 분위기가 확 무거워진다. 이분은 자기가 큰 실수라도 한 모냥 안절부절이다. 나의 감정도 뒤섞인다. 더이상 묻지 말고 빨리 끝내줬으면 하는 마음과 그래도 아이가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들렸던, 어쩌면 털 한두가닥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이곳이니 이쁘게 잘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야 할까 하는 마음. 솔직히 오늘은 피곤도 하고 그냥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심바 그럼 장례식 해줬어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처음 꺼낸 말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낼 뻔 했다. 그럼 뭐 아직 우리집에 있겠니. 

"많이 아프다 간건 아니죠?"

"심바, 그래도 좋은 곳 갔을거에요..."


으아아아. 제발 아무말 말고 빨리 끝내주시길.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로만 대답을 대신하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다가 갑자기 내가 너무 못났다는 생각을 했다.나보다 적어도 20살은 어릴 저 분은 지금 한마디 한마디 어렵게 말을 꺼내고 있고 나를 위로하려고 하고 있다. 아이와 자주 왔던 이 공간에서 나는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있을까. 못났다, 정말.

그리고 이젠 집에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면 어떤가. 


나도 어렵게 위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과 네일샵 사이는 아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산책길이 있다. 

한시간을 나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탈출이다! 하고 총총총 뛰어다니던 모습.

집으로 끌려와서 발 씻기고 나면 다시 또 스르륵 잠드는 모습.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 루틴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심바, 손! 하면 한번만 잡아주면 안되겠니. 꿈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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