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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토록 Aug 18. 2019

'와'인 이유

훈련병과 와 아이쓰



 어릴 때부터 항상 우리 집 냉동실에 구비되어있던 아이스크림은 '와'였다. 아이스-크림은 들척지근한 유크림으로 혀를 무겁게 풍요롭게 내리누르는 진한 풍미가 있지만,  와는 맑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사각사각 미세한 얼음 알갱이로 어우러진 셔벗이다. 제법 풍부한 바닐라/딸기맛의 그것을 한 스푼 뜨는 순간 냉기를 내뿜으며, 담뿍 입에 넣으면 뒷골이 얼얼할 정도였다.


 지금에야 수박 맛이니 멜론맛인지 다시 잘 나오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게 단종이 되어 보지 못할 때가 있었기에 못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옥불(?) 같은 곳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데, 2012년 7월, 한여름 철원 육군 사단 훈련소에서였다.


 주차가 쌓여갈수록 늘 배고픈 데다 당분에 메말라있는 훈련병들에겐, 종교행사에서 받아와 밀반입한 초코파이 따위의 당분에 현실 세계의 재화는 힘을 잃기도 했다. (' 초코파이 한 개 만원에 산다' 같은 밀거래를 시도하는 동기들도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아무도 안 판다.) 이러저러한 부질없는 시도들 조차 단념하게 된 짬 좀 찬 훈련병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포복훈련을 순응하며 산 중턱에서 흙땀을 고물 삼아 인절미처럼 버무려지고 있었다.


 그러다 훈련 중 폭염으로 어느 병사가 더위를 먹고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수습되어 실려가는 동안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다디단 시간을 보내던 중, 언덕 능선으로 이송되어오는 박스들의 행렬이 눈에 띄고 겉면에 커다랗게 쓰인 '와' 표기가 죽어가는 눈에 내리꽂히며 활기를 주었다. 아 센스 있던 우리 훈련소 주임원사 아조씨. 훈련소라도 드물게 나오는 아이스크림 부식이 있긴 있지만 이것을 정해진 일정에 분출해야 한다. 날이 너무 더워 사기저하를 우려해 일정을 조금 조절해주신 것이다. 


 불쌍하게도 산 중턱의 훈련장을 내려가 부식 박스를 들고 오는 차출된 훈련병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나름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품 안의 냉기를 즐기고 있었다. 교관의 지휘 아래 부식이 분출되고 반쯤은 녹아내린 '와'를 마주한 순간, 그래도 여전히 사그락 하는 그리움을 느끼며, 달콤한 바닐라 맛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는 냉기에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감탄. 


    와······. 

 반쯤은 장난이었겠으나 이후로 입을 댄 훈련병들이 여기저기서 '와-'를 외치며 순식간에 활력을 찾아나갔다.

극한의 상황에서 느끼는 작은 것의 소중함은 더욱 강렬한 기억을 남기는 것이다. 아직도 와만 보면 그때의 심정이 떠오른다. 먹보답게, 군 시절 추억의 가장 첫 번째를 먹을 걸로 남겨온 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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