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상담에서 1년간의 상담을 정리하는게 어떨까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자연스럽게 정리모드였고 어떤 이야기로 정리하면 좋겠냐고 쌤이 물었고,
1. A
2. 어머니와의 관계
3. 애인과의 관계
4. 나와의 관계
로 나눠서 하나씩 정리해보면 어떨까하였다. 오늘은 A에 대하여 그리고 살짝 나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나누었다. 1년이나 상담을 했다니!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다. 처음엔 대면으로 했고, 코로나때문에 2달 정도는 쉬었던것같다. 그러고나서, 비대면으로 지금까지 거의 8개월 가량을 주1회가량 상담을 진행하였다.때로는 한시간이 훌쩍 넘도록 길게 이야기가 이어졌고 때로는 흥분했고 때로는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처음엔 쌤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었는데 (그녀는 내눈에 너무나 시스젠더 여성이었고, 너무나 착해보였달까)
시간이 지나면서 라포가 형성되었다. 물론 몇번의 고비가 있었고 쌤 역시 나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나 역시 몇번이나 상담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1년이나 되는 시간을, 심지어 대면보다 더 긴 시간을 비대면으로까지 상담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쌤이 나에게 자주 묻는 말이 있는데 "무엇을 위해서 이 상담을 하느냐"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상담을 하는걸까? 때로는 그 이유가 너무나 많다고 느껴지지만 어떨때는 단 하나의 이유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아주 느릴지언정, 너무나 작은 것일지언정 상담을 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에 대해서.. 그것은 소중한것이지만 나를 분노하게했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과 '비교적' 화해하는 순간을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었다는 것.
오늘 나는
1. 내가 A에 대해서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고
2.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늘 '남의 덕'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 역시 노력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했다는 것을.. 어제 산책중에 생각하게 됐다는 것을 말했다.
때로는 하염없이 쓸쓸한 나.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나.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살게 된걸까' 궁금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과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자만사이를 오가며 정작
내 마음에는 한없이 무관심했다. <= 이 말이 너무나 전형적인 말이긴 하지만.
또한 아직도 도저히 나에게 마음을 쓴다는 것이 어떤건지 상상이 잘 되지 않긴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들여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1년 전의 나는 너무나 화가 나 있었고, 힘들었고, 정말이지 견디기 괴로웠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는데
그러고나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준 쌤에게 고마웠고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를 주어로 두는 것을 그토록 경멸하면서
나를 혐오하는데 가장 앞장섰다는 사실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물론 나는 아직도 크게 나아지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의 요소가 많이 사라진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상담을 그만둬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꽤나 길게 했으니까. 내가 더 좋아지리라 생각해본다.
물론, 여전히 많은 물음표를 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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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스카치를 마셨고 이후에 또다시 잠깐의 혐오가 스쳤고. 그냥 그랬단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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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미황사 뒤의 달마고도에 가서 잠깐 걸었고 오늘은 황이랑 목숨을 걸고 도로 산책을 했다.
큰바람재에는 정말 큰바람이 불었다. 가면서 무악재얘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