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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Dec 12. 2023

사회불안의 매커니즘

사회불안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속되는가?

“우울증을 전문으로 보면 망하고, 불안장애를 전문으로 보면 부자가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개원가에 회자되는 재밌는 격언이다. 우울증은 무기력하여 치료를 지속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불안장애의 경우, 어떻게든 자신의 불안에 대해 이해하고 답을 찾아내고 싶어한다. 불안이란 기본적으로 현재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불안의 매커니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불안은 왜 생기고 지속되는 걸까? 이번 글에서는 사회불안을 만들고 지속시키는 일곱 가지 요소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각각의 요소들을 이해하고 나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기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박사까지 졸업한 유능한 사람이야”와 같은 문장의 형태일 수도 있고, ‘방 안에서 음침하게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처럼 특정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를 ‘자기 이미지’라고 부른다. 연구자들은 사회불안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특정한 형태의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주로 자신이 부족하거나, 어색하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흔히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나는 어리숙해보여.

난 지루한 사람이야.

난 조금 이상하고 어색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할 거야.

다른 사람들 앞에 설 때면 긴장하며 떨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이러한 자기 이미지는 두 가지 문제를 지닌다. 우선 그러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순간,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더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그러한 이미지에 맞는 정보만 취사 선택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설령 현실 세계에서 나는 그렇게 지루하거나 어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자기 이미지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어 내가 정말로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


둘째, 자동적인 생각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종종 특정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곤 한다.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문자 그대로 ‘떠오른다’. 이처럼 특정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동적 사고’라고 한다. 연구자들은 사회불안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특정한 형태의 자동적 사고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예측: “사람들이 내가 불안해보인다고 생각할 거야.”, “나는 비웃음을 당할 거야.”  

걱정: “내가 말했을 때 사람들이 아무런 대답도 안 하면 어쩌지?”, “내가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없으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거야.”  

판단: “나는 뭔가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 “나는 지금 멍청해보여.”  

의심: “나는 이걸 잘 해내지 못할 거야.”, “나의 불안이 사람들에게 티가 날까?”  


사회불안이 있을 때는 이러한 생각들이 과도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령 사람들은 나의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아예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인지했더라도 그냥 ‘조금 긴장했나 보네’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셋째, 믿음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의 인지 체계를 조금 더 깊이 탐구해보면, 그들은 자신, 타인, 또는 세상에 대해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어.”

“사람들은 항상 비판적이고 평가적이야.”

“이 세상에서 나약한 사람은 도태되고 말 거야.”

이러한 믿음이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 “사람들은 이걸 눈치채면 어떻게 하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어.” → “혼자 멀뚱히 서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은 항상 비판적이고 평가적이야.” → “발표할 때 한 치의 실수라도 하면 안 돼.”

“이 세상에서 나약한 사람은 도태되고 말 거야.” → “내가 실수하면 결국 나도 도태되고 말겠지.”


그리고 위와 같은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 서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넷째, 안쪽으로 향하는 생각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바깥쪽으로 향하는가, 안쪽으로 향하는가. 바깥쪽으로 향한다는 말은 우리의 주의가 실제 현실에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주변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며, 눈 앞에는 어떤 것들이 보이고, 어떤 향기가 나는지. 반면 안쪽으로 향한다는 건, ‘나’의 생각, 감정,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뜻한다.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안쪽으로 향해 있을 때가 많다. 흔히 다음과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마음속에 떠오른 찰나의 생각들(예: 나는 뭔가 망치고 있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신체 반응 (예: 떨리는 목소리, 화끈거리는 얼굴, 더듬는 말, 등허리에 흘러내리는 땀)

내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나의 자기 이미지


하지만 이와 같은 안쪽으로 향하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불안을 증폭시킨다.   

실제 그 순간에 머무르지 못해 퍼포먼스가 떨어지고, 그 결과 불안감이 가중됨.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은 철저히 무시하도록 만듦.

위험을 과장함 (예: 떨리는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다 망쳐버릴 거야’라고 생각하게 됨)

그 생각에 집중하다 보니 정말로 그렇게 하게 됨 (예: ‘목소리를 떨지 않아야 돼’라고 되뇌이다 보면 오히려 목소리가 떨림)


다섯째, 안전행동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서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이를 ‘안전행동’이라고 한다. 흔히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과 일대일로는 만나지 않음

무언가를 멍청하게 대답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의 의견은 제시하지 않음

눈을 마주치지 않음

내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반복적으로 리허설 함

긴장을 풀기 위해 술을 마심

나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질문만 반복함


하지만 이러한 안전행동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회불안을 심화시킨다.   

진실을 배울 기회를 박탈함: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서 하나씩 분석하고 따져보면 나의 생각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이 ‘나는 멍청해보일 거야’라고 100점 만점으로 확신할 때, 실제 다른 사람들은 이를 20-30점 정도(’긴장했나 보네’, ‘발표할 때 떠는 편인가? 나도 그런데’)로만 믿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안전행동은 이러한 사실을 배울 기회를 철저하게 박탈시키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강화한다.

자기의심을 높임: 안전행동은 나의 주의집중을 ‘안쪽으로’ 향하게 한다. ‘휴, 눈을 마주치지 않으니 목소리가 덜 떨리네’와 같은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쪽으로 향하는 생각은 ‘나는 사람들 앞에서 어색할 것이다’라는 자기 의심만 높이게 된다.

안전행동이 실제 우려한 결과를 만들어 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걱정해서 끊임없이 리허설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실제 일상 대화를 할 시간이 왔다.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로봇처럼 딱딱하게 준비한 말만 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말로 ‘저 친구 왜 저렇게 어색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안전행동이 일종의 ‘자기 충족적 행동’이 된 것이다.


여섯째, 예기불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면서 걱정하는 것을 ’예기불안’이라고 한다.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예기불안을 보이곤 한다. ‘오늘 수업에서 발표를 해야 하면 어쩌지?’, ‘지나가다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면 어쩌지?’, ‘근무를 하다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지?’ 이러한 형태의 걱정은 때론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불안에서 나타나는 예기불안은 이미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다. 예기불안은 그저 과거의 부족했던 기억만 되새기면서 끊임없이 부정적인 자기이미지, 자동적인 생각, 믿음, 안쪽으로 향하는 생각을 강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예기불안을 느낄 때에는 종종 최악의 사건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또한 사회불안을 강화할 뿐이다.


일곱째, 끊임없는 반추

정말로 사회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잘 해내지 못했다. 가령 발표에서 제법 실수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보자.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쩔 수 없지… 다음에 더 잘하자’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사회적인 상황에서 부족했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이를 ‘반추’라고 한다. 반추는 마치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답을 찾아낼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연구들은 반추가 그 어떠한 문제 해결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저 부정적인 생각과 자기이미지만 되새기며 강화할 뿐이다.


위 일곱 가지 요소에 스스로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내가 왜 사회불안을 앓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이해되면 덜 불안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해결되었다면 스스로 노력해보아도 좋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사회불안에는 인지행동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다. 사회불안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구해보자. 조금만 노력하면 나의 삶이 제법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저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디스턴싱(Distancing) 팀을 이끌며 인지치료사와 함께 '거리두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울, 불안, 무기력, 번아웃 등의 문제로 고민 중이라면, 아래에서 디스턴싱을 만나보세요.


출처: https://orwell.distancing.im/blog/social-anxiet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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