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 생각과 거리두기
원래부터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의 평가적인 반응이 그렇게 만들 뿐입니다. 이 말은 감정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드디어 감정입니다. 왜 ‘드디어 감정’이냐고요?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다루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서야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거나 없애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섭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는 모두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물론 효과도 있지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호흡에 집중합니다. 물론 이완이 되기도 하고, 그 순간만큼은 차분해지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는 일은 드물며, 보통의 경우에서는 상태 유지를 위한 관리, 가장 나쁘게는 회피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항우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우울제는 근거를 갖춘 좋은 약물입니다. 항우울제를 통해 초기 불꽃을 만들어내고 이후 생각과 행동을 체계적으로 다루며 에너지 수준을 높여나가며 삶의 활력에 불을 붙이면 됩니다. 분명 항우울제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연료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항우울제는 그렇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감정을 밀어내기 위한 알약 정도로 여겨지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을 땐 마음대로 약을 줄이기도 하고, 또 우울할 땐 정해진 용량보다 더 많은 약을 입에 털어넣기도 합니다. 결국 항우울제는 제기능을 잃어버립니다.
명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명상은 마음을 바라보는 혁신적인 발견 중 하나입니다. 그것이 왜 작동하는지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연습을 하다보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명상은 사람들에게 몸을 편히하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시선을 돌리는 용도로 전락해버리기도 합니다.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회로가 만들어집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 호흡 명상을 하여 주의를 돌린다 → 조금 나아진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특정한 행동이 발생하는 빈도를 더 높인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강화(reinforcement)라고 합니다. 호흡 명상을 이렇게 사용하였을 때 결과적으로 당장 부정적인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 때문에 호흡 명상을 하는 행동은 강화됩니다. 더 자주 명상을 하게 되죠. 물론 잠깐의 이완과 주의 전환도 좋은 기능입니다. 하지만 다음 명제들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마음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쓴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회피할수록 강해진다. 텅빈 마음은 목표가 아니다. 머릿속에 자리 잡은 회로는 정확히 이 명제들과 반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명상은 제기능을 잃어버립니다.
이처럼 감정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목적이 오해가 될 여지도 많습니다. 심지어 감정은 가장 추상적입니다. 생각은 적어도 내용이라도 명확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행동/충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은 어떤 느낌이, 몸의 어느 부위에서, 어느 정도의 강도로 느껴지는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애매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체 감각인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내용도 불분명합니다. 우울하다, 불안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감정은 정말로 나 자신의 내재된 특성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원래부터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의 평가적인 반응이 그렇게 만들 뿐입니다. 감정은 나의 내재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 또한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감정 또한 역시 생각의 강에서 떠내려오는 나뭇잎, 생각의 하늘에서 떠다니는 구름, 또는 생각의 공장에서 흘러가는 박스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더 정신 사나운 것 같기도 합니다. 주체가 되지 않을 때도 많지요. 감정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마음속에는 야생마가 한 마리 있습니다. 야생마는 아주 흥분상태로 뛰어다닙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야생마를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애썼습니다. 두 다리를 잡아보기도 하고, 꼬리를 잡아 당겨보기도 합니다. 눈을 가리기도 하고, 채찍질을 해서 길들여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야생마는 얼마나 성질이 사나운지 그럴수록 더 포악해집니다. 당신은 점점 지칩니다. 야생마의 체력을 이길 순 없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애쓰고 지치고 때론 탈진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야생마를 길들이는 방법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놓아주는 것입니다. 마음껏 날뛰도록 풀어주는 것이지요. 자유를 얻은 야생마는 미친듯이 질주하며 마음껏 성질을 표출할 것입니다. 상관 없습니다. 왜 상관이 없냐고요? 야생마가 뛰어놀 들판이 아주 넓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는 그 들판에 있지도 않습니다. 들판의 울타리 밖에서 여유롭게 야생마를 바라보며 “고놈 성질 참 고약하네”라고 말할 뿐입니다.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는 곧 제풀에 지칩니다. 갑자기 온순해져 들판의 풀들을 뜯어먹기도 합니다. 때론 잠들기도 합니다. 물론 가끔 다시 폭주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들판 위에서 마음대로 노는 야생마일 뿐입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야생마의 존재와 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야생마도 아니고, 심지어 들판도 아닌, 그보다 더 큰 공간과 거리감 속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같습니다. 통제하려고 할수록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감정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거리를 둔 채 바라본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감정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분노를 느끼고 있구나”가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는 지금 분노라는 감정이 떠오르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표현 모두 알아차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여전히 감정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감정과 자신을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하며 바라보는 것이지요. 디스턴싱된 알아차림인 것입니다.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 감정에 대한 나의 반응이 그것을 아주 명확한 실제로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그것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기꺼이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강렬한 감정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경험할 수 있는 걸까요? 우선 지나치게 과도한 감정이라면 그것을 조금은 잠재우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야생마가 너무 흥분하여 정신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많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찬물에 얼굴을 담그거나 얼음팩으로 얼굴을 문지릅니다. 이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생리적 각성을 낮춰줍니다. 호흡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명상을 위한 호흡이 아니라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호흡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들숨 3초, 날숨 7초, 한 세트를 1분에 총 6번, 5분 동안 30번 진행합니다. 날숨을 더 길게 가져가는 것은 날숨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기 때문입니다. 체온과 호흡, 모두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고 제거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기꺼이 경험하기를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자, 이제 감정이 지나치게 과도하진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른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패닉에 빠져버릴 위험은 적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 없앨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제 다른 반응을 해 볼 시간입니다. 생각이나 느낌, 감정으로부터 주의를 되돌리는 대신, 그것이 마음속에 남아 있게 합니다. 그것이 몸의 어느 부위에서 느껴지는지 관찰해봅니다. 불안할 때 가슴이 답답하다면 그 느낌에 온전히 집중해봅니다. 피하려고 하지 말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해봅니다. 언젠가는 감정 자체가 또렷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구나. 죄책감이 느껴지구나.” 유레카! 기쁜 일입니다. 관찰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그 느낌이 무엇인지 온전히 느끼고 관찰해봅니다. 야생마가 뛰어놀 들판은 충분히 넓다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감정을 관찰해보시길 바랍니다. “내 마음속에 불안이 있구나”, “불안은 이런 느낌이구나. 신기하네”, “뭐, 얼마든지.” 이렇게 감정을 바라보다 보면 더 이상 강렬한 감정이 주의를 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뭇잎은 떠내려가고, 구름은 흘러가고, 박스는 이동하며, 야생마는 곧 풀을 먹거나 낮잠을 자기 마련입니다. 그 순간이 오면 잠시 생각의 강, 하늘, 공장에 앉아 내면을 잠시 돌아보았다가 다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이러한 감정이나 느낌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갖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이 연습은 그 감정이 없어지는 것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의도는 감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 자체를 더 편한 것으로 되돌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감각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속엔 생각, 감정, 감각, 충동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떠오른 것에 대한 나의 평가적인 반응은 그것을 괴로움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당장 모든 것이 변할 순 없겠지만 연습을 통해 이것이 머리가 아닌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 오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개별적인 심리적 사건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건, ‘나’라는 존재는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더 큰 그릇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생각도, 감각도, 그리고 감정도, 결국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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