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 생각과 거리두기
우리는 ‘나’가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생각은 자동적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확하고, 편향적이며, 지나치게 자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생각에 강하게 반응합니다. 우리는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생각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고 그것에 강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죠. 제거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고, 바꾸려고 합니다. 텅빈 마음, 긍정으로 가득 찬 마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회피할수록 강해질 뿐입니다. 이는 사실 감정과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과 감각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원래부터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이 측면에서 심리적 괴로움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감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상당 부분 과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경험한다면 괴롭지 않다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기꺼이 경험하기를 방해하면서, 생각, 감정, 감각, 그 모든 레몬맛 팝콘들을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불러일으키는 생각 습관이 있습니다. 아주 고약한 녀석이지요. ‘반추’라는 생각함정입니다. 반추는 특정한 일, 기억, 기회, 단점, 의미, 사건 등을 곱씹는 행위를 뜻합니다. 마치 소가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계속해서 곱씹는 것이지요.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과거의 잘못이나 놓쳐버린 기회, 개인적인 단점을 곱씹기도 하죠.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상황이 바뀌었을까?”
“나의 이 부분만 개선되면 참 좋을 텐데… 그랬더라면 지금쯤…”
좋게 예상되지 않는 미래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일이 벌어질 거야. 그러면 어쩌지? 끔찍할 것 같아.”
어떤 대상이나 사건의 의미를 곱씹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런 거지?”
“이런 일이 왜 벌어진 거지?”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런 거지?”
반추는 얼핏 보기에는 효과적인 전략처럼 보입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분석하고 교훈을 얻고 또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반추는 단순히 회고와 대비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건강한 생각 습관이지요. 문제는 그러한 사유의 방향이 심리적 괴로움의 의미, 원인, 그리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로 흘러갈 때 발생합니다. 즉, 반추는 문제 해결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실은 해결할 수 없는 심리적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추에 빠지면 끊임없는 걱정 속에서 불안함을 없애려고 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사색과 의미 탐색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저조한 기분을 이해하여 이를 바꾸고, 없애고, 차단하려고 합니다.
반추는 문제 해결을 가장한 ‘거리 가까워지기’에 불과합니다. 많은 연구들은 반추가 겉보기엔 문제 해결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그로부터 어떠한 이점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우울함이나 불안감을 겪는 사람들은 반추를 통해 현재 마주하고 있는 괴로움의 본질에 대해 귀중한 통찰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한 생각들은 대부분 별다른 깨달음 없이 인생의 부정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깨달음이 없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제는 과거에 존재하여 이미 일어났거나, 또는 미래에 존재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당장 내가 삶 속에서 향유할 수 있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반추에 빠진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재밌는 비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운전을 하고 중요한 모임에 가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 부모님의 생일 파티, 사랑하는 자녀의 학예회,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과의 만남. 들뜨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그러던 중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동차의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입니다. 당신은 잠시 한 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이런, 모임은 앞으로 30분 뒤에 시작하네요. 모임 장소는 지금 이 주차장으로부터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나요? 타이어에 왜 바람이 빠졌는지 찾아낼 건가요? 정확히 어느 부위에서 바람이 빠지고 있는지 확인할 건가요? 다시는 바람이 빠지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인가요? 지금 중요한 이 순간,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고찰해 보실 건가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삶에서 해나가야 할 것들이 놓여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향유할 수 있는 행복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에 앉아서 상황의 의미, 과거, 미래를 파해칠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시하는 것들을 향해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반추에 빠진 우리들의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심지어 타이어는 자동적으로 다시 바람이 차오르진 않지만, 레몬맛 팝콘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알아서 흐릿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리를 두지 못하고, 자동차 속에서 생각에만 몰두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기로 선택합니다.
이러한 반추적 몰두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곤 합니다. 우선 반추는 꾸러미의 모든 요소들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머릿속에서 반추의 회로가 돌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 괴로운 감정, 불편한 신체 감각은 정신없이 튀어오릅니다. 팝콘 더미에 깔려 숨을 못 쉴 지경입니다. 레몬의 노란 투명색 과육에서는 즙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 과정을 몇 번 밟다보면 삶을 제대로 지탱하기가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반추에 빠지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빠져나오는 것도 어렵습니다. 또한 꾸러미의 상황, 생각, 감정, 감정, 행동/충동은 정신없이 뒤섞여 ‘분리하기(isolation)’가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 괴로움은 커져만 갑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떠오르는지 아시나요? “문제를 해결해야 해.” 괴로움 속에서 마음은 문제 해결적인 본능을 자각합니다. 다시 문제 해결에 집중합니다. 또 깊은 반추에 들어갑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반추는 우리의 오래된 정신적 습관입니다. 마음은 아주 오랜 정신적 흔적이나 자국 위를 달립니다. 결국 반추는 ‘내 머릿속에서 구축된 세상’, 특히 ‘미래나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세상’에서 살도록 만듭니다. 그 과정이 심해져 우울증이 찾아오면 고통스러운 감옥에 수감된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만성적인 우울증을 앓은 사람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정말이지 머릿속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버린 죄수 같아요." 그러한 감옥 속에서는 끝맺음 없이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그저 똑같은 생각만 반복하게 될 뿐입니다.
이처럼 반추는 매우 강력한 생각함정입니다. 따라서 생각을 생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에 중심을 두었던 이전과는 달리, 반추를 마주했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지금 여기’로 돌아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쉬운 초점은 호흡입니다. 반추에 빠졌을 땐 호흡을 마음의 닻으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유용합니다. 호흡은 항상 지금 이 순간에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활용이 가능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반추에 빠진 순간을 알아채야 합니다. 이는 이전에 올렸던 명제들, 그리고 그간 진행해왔던 연습들이 도와줄 것입니다. 알아차렸다면 다음 세 가지를 명확히 하기를 바랍니다.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1.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나?
2. 나는 뚜렷한 목표 없이 어렴풋한 과거나 미래를 헤매고 있었나? (아니면 그 문제에 대해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과거를 회고하거나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나?)
3. 나는 그러한 생각을 5분 이상 지속했는가?
2, 3번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다음 두 가지에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4. 그렇게 생각을 반복했더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는가?
5. 그렇게 생각을 곱씹었더니 기분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는가?
4, 5번에 대해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곧바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합니다. 공기가 코와 목을 지나는 느낌, 호흡할 때 내 몸의 움직임, 공기가 폐의 어느 부위까지 닿는지, 호흡의 속도, 간격, 들숨과 날숨이 바뀌는 지점 등 호흡에 집중해봅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생각을 헤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마음이 수백 번 방황하면 수백 번이라도 그것을 호흡으로 되돌리면 됩니다. 횟수가 중요한 것도, 얼마나 오래 생각을 헤매고 있었는지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이 과정을 5분 정도 밟아봅니다. 또는 더 이상 정신 없이 생각을 헤매지 않을 때까지 반복해도 좋습니다. 반추에서 빠져나왔다면 이제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다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그곳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반추적인 마음이 떠올랐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저 삶에서 나에게 행복감이나 성취감을 주는 일들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습니다. 반추적인 생각들을 없애기 위해 호흡에 집중한 것이 아닙니다. 일단 반추의 파괴적인 회로가 돌고 있는 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입니다. 반추적인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없앨 필요도, 통제하려고 할 필요도, 바꿀 필요도 없습니다. 기꺼이 경험하길 바랍니다. 마음에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해서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추의 꾸러미들 또한 하나씩 뜯어보면 결국 빈 깡통과 같은 심리적 사건들일 뿐입니다. 나는 그것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바를 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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