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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Jun 08. 2022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삼키고

팀원


팀원의 자리로  그의 모니터를 보며 한창 업무 이야기를 하던  '카톡'하고 알림이 울렸다.

   '오늘도 늦게 마쳐?'

그의 여자친구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였다. 메세지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니기에 애써 모른 척 하고 업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날 팀원은 결국 막차를 타고 집에 갔고, 나는 늘 그렇듯 자정을 넘겨 차를 렌트해 귀가했다.


다음날 저녁, 또 다른 팀원과 이야기를 하던 중 이번엔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팀원의 휴대폰이었다. 그의 휴대폰 화면 위로 '여자친구'라는 이름이 보였다. 나는 전화를 받고 오라고 했다. 팀원은 그냥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두 번 더 전화를 받고 오라고 권했으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고 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상황을 바꾸려면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지, 어떤 느낌이 있을 때 나의 상황이 바뀌는지 잘 알고 있다. 전교에서 150등 정도하던 중학교 시절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이 정도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느낌은 나의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 팀은 강남의 큰 공유오피스에서 가장 먼저 불을 켜고, 가장 늦게 불을 끈다. 나는 지난 몇 주간 퇴근할 때 다른 팀들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정도로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팀이 지치진 않을지, 삶에서 중요한 다른 것들을 놓치고 지내는 건 아닐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팀원들이 잘 따라와주고 있다. 팀원들 모두 공개 채용보다는 일일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마음이 맞아 합류하게 된 사람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설득해서 함께 일하게 된 그들을 위해서라도, 혹은 대신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을 그들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우리들의 가치를 증명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저는 우리 팀이 잘 될 거라고 확신해요.'

나와 같이 새벽에 퇴근하던 한 팀원분이 건넨 말이었다. 힘이 되는 말이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실없는 감사하다는 말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는 걸 잘 알기에, 가벼운 말 몇 마디로 그들의 신뢰에 보답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기에, 휴대폰이 울리고 메시지 알림이 뜨는 날에도, 목 끝까지 차오르는 "열심히 따라와줘서 감사해요. 오늘은 그만 이쯤하고 내일 이야기해요. 여자친구분이 연락오시잖아요"라는 말을 삼키고, 낯 두꺼운 얼굴로 묵묵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더 집중한다. 그들 손으로 우리 사회에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보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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