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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Oct 26. 2023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우울증

나는 우울증일까?


내가 우울증인가? 나는 우울한 걸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우울증의 진단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피검사나 영상을 찍는다고 해서 진단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진단’, ‘우울증 자가검사’와 같은 것들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마침 세계적인 정신의학 학술지 World Psychiatry에 재미있는 아티클이 올라왔다. “The Lived Experience of Depression.” 직역하면 “우울증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생생한 경험” 정도가 되겠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우울증이란 어떤 세계인 것인지, 그들의 말을 빌어 우울증을 설명하고 있다. 딱딱한 진단 기준으로는 내가 우울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은 ‘우울증의 주관적 세계’에 대한 묘사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보자.



1.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

“끔찍한 죄책감이 느껴졌어. 하지만 나는 그걸 어떤 기억이나 행동, 이외 나 자신이의 어떤 부분에도 연관지을 수 없었어.”


“변화, 죽음 실패, 성공, 혼자 있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수년 동안 나를 마비시켰어.”


“나는 오늘 너의 고민을 들어주기 힘들어. 나는 스스로를 부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


2.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음

“이전에 나를 위로해 주던 것들은 더이상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아”


“내 연인은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길 기대해. 하지만 난 그런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나 자신에게 흡수되며 스스로를 잃어갔어. 사랑, 일, 가족, 친구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지.”


3. 에너지가 완전히 빠져나간 무거운 몸

“하루 종일 자도 피곤해. 절대로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해.”


“역류하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 같이 힘들어.”


“중력이 내 몸에만 세상의 다른 곳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


“몸과 머리에 가해지는 압박감”


“장이 막혀 음식이나 물을 섭취할 수가 없어”


4. 마음, 몸,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느낌

“내 몸에서 오는 신호들은 차단되었다. 나는 듣지 않는다. 기계처럼 되어서 그저 해야 할 것만 할 뿐이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것 같아. 걷는 시체 같아.”


“나는 인간이 아니야. 나는 나 자신이 싫어.”


5. 목적과 희망의 결여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떠한 추진력도,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 순간에 존재할 뿐이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병과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악취와 벌레만 남겠죠.”


“나는 가만히 있다가 쫓겨났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


“처음에는 세상에서 기능할 수 있었지만, 점차 자신의 마음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했어.”


6. 과거와 현재 우울한 자기 사이의 불일치

“그냥 내가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나는 더이상 나 자신조차도 모르겠어요.”


“거울 보면 똑같이 생겼지만, 뭔가 달라야 할 것 같아요. 그냥… 가버렸어요.”


“내가 알던 나는 사라졌어요.”


“나는 불꽃이 튀고 에너지가 넘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7. 고통스러운 감옥에 수감

“우울증은 구먼과 같아요. 갇혀 있어요. 나갈 수 없어요.”


“탈출구도 찾을 수 없고, 방향도, 에너지도 없어요. 그냥 짓누를 뿐이죠.”


“머릿속이라는 감옥 속에 갇혀버린 죄수 같아요”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 같아요. 숨이 막히고. 숨이 차요.”


8. 생각에 대한 통제감 상실

“기능도 질서도 없이, 머릿속에서 수백 개의 생각이 빙빙 돈다. 완전한 혼란이다.”


“생각은 그냥 오는 거야. 가끔은 생각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오는 거야. 막으려고 하지만 말릴 수가 없어.”


“화제를 바꾸려고 하는데 뇌가 이런 걱정을 하라고 하고, 그 다음엔 이런 걸 걱정하라고 하고…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어.”


9. 세상에 대한 통제감 상실

“심지어 몇몇 작은 사건들을 통제할 방법도 없었어요.”


“옷장에서 녹색 블라우스를 입을지, 흰색 블라우스를 입을지 결정하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서 있었어요. 모든 것이 중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나는 가장 간단한 것조차 결정할 수 없었어요. 나는 결정할 때마다 그것을 하지 못합니다.”


10. 무뎌짐, 공허함, 존재하지 않음, 죽음

“나를 행복하게 해주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냥 멍해. 없어. 그냥 존재하는 거야. 살지 않아. 아무것도… 무감각한 상태야.”


“내 머리와 몸과 온 세상이 텅 비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명백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11. 탈출구로서 죽음

“저는 죽은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죽었다’는 것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덜어주진 못하죠.”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은 정말로, 솔직히 죽음입니다.”


“내가 죽는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기억도, 아픈 기억도, 더 이상의 현실적인 압박도.”


“나는 죽음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12. 생체리듬의 변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잠에서 깨서 약간의 잠을 자고, 땀을 흘리고, 혼란스러워요.”


“나의 몸은 단지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나는 종종 하루에 20시간씩 잠을 잡니다.”


“오직 생계를 위해 먹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음식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어요.”


13. 압도적인 과거

“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난 내 인생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을 뿐입니다.”


“지난 삶에 대한 죄책감은 나를 숨막히게 합니다.”


14. 침체된 현재

“시간이 멈춰서 며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밖이 흐리다. 새들은 노래를 멈췄다. 꽃은 검게 물들었다. 모든 게 침묵했다.”


15. 불가능한 미래

“미래에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내가 들어갈 큰 빈 공간이 있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고, 어둠 속에서도 미래를 기다렸습니다.”


“이런 일이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정신건강 문제는 실무율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와 같은 표현들을 살펴보며 나의 삶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되고 있는 것 같다면, 그저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찍 개입하면 약물이든, 인지치료든 생각보다 뛰어난 효과를 내기 마련이니까.




참고문헌

Fusar-Poli, P., Estradé, A., Stanghellini, G., Esposito, C.M., Rosfort, R., Mancini, M., Norman, P., Cullen, J., Adesina, M., Jimenez, G.B., da Cunha Lewin, C., Drah, E.A., Julien, M., Lamba, M., Mutura, E.M., Prawira, B., Sugianto, A., Teressa, J., White, L.A., Damiani, S., Vasconcelos, C., Bonoldi, I., Politi, P., Vieta, E., Radden, J., Fuchs, T., Ratcliffe, M. and Maj, M. (2023), The lived experience of depression: a bottom-up review co-written by experts by experience and academics. World Psychiatry, 22: 352-365. https://doi.org/10.1002/wps.21111



저는 디스턴싱(Distancing) 팀을 이끌며 인지치료사와 함께 '거리두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울, 불안, 무기력, 번아웃 등의 문제로 고민 중이라면, 아래에서 디스턴싱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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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orwell.distancing.im/blog/depression-self-eval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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