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바다 앞에서 멈춰 선 날 – 공포는 현실보다 마음속에 있었다
필리핀 세부.
햇살이 따뜻했고, 바다는 상상 이상으로 맑았다.
모래는 부드러웠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바다 앞에서 멈춰 섰다.
물은 생각보다 훨씬 깊어 보였다.
그저 파란색이 아니라, 어딘가 검푸른 그러데이션.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호흡이 가빠진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듯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 또 고르며,
마스크를 고쳐 쓰고, 핀을 확인했다.
이건 단순한 스쿠버다이빙이 아니었다.
나에게 이건 오래된 기억과의 정면승부였다.
어릴 적, 나는 차가운 물속에서 반복적으로 숨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물속으로 머리가 처박히고,
숨을 들이쉴 수 없는 그 몇 초의 시간이
내 몸과 기억 어딘가에 각인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물이 무서웠다.
정확히 말하면,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웠다.
수영을 배우려 해도,
물안에서 약간만 숨이 편치 않다는 느낌이 오면
내 몸은 자동으로 경직되었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그 기억은 머리로는 잊은 듯했지만,
몸은 여전히 반응하고 있었다.
다이빙 센터에 등록할 때,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 물이 무섭고, 수영도 못해요.”
강사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수영 못해도 돼요. 다이빙은 호흡만 잘하면 돼요.”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갖 최악의 상상이 맴돌았다.
레귤레이터가 고장 나면?
내가 숨을 멈추면?
그 깊은 바다에서 내가 다시 숨을 쉴 수 없게 되면?
사실 그 모든 질문 속에 담긴 진짜 메시지는 이거였다.
“나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나는 강사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바다로 들어갔다.
물은 내 무릎, 허리, 가슴을 지나
결국 얼굴 앞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굳었다.
숨이 끊기듯 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조심스레 숨을 들이쉬었다.
레귤레이터를 통해 들어온 첫 바닷속 공기.
그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나를 다시 안심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거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아내렸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지만,
가슴속 어딘가가 뚫린 느낌이었다.
나는 해냈다.
그날, 나는 물속에 들어간 것뿐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공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