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먹고 또 먹어도 허기진 느낌이 며칠 지속되었습니다. 한동안 먹지 않았던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스트레스가 늘었는지 늦더위 때문인지 아무튼 아이스크림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뭐가 부족한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달콤한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미숫가루에 굴을 잔뜩 넣어 먹어보았지만 역시 그뿐이었습니다.
뭘 먹으면 이 증세가 사라질까 고민하면서 마트에 갔다가 로컬푸드 판매대에서 호박잎과 풋고추가 눈에 띄었습니다. 호박잎은 때 지나면 더는 볼 수 없는 귀한 식재료입니다. 고추는 하우스 재배한 것과 달리 자연 치유 흔적이 있고 살짝 구부러진 것이 공판장에서 좋은 등급을 받는 매끈한 고추와 달리 뭔가 야생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호박잎은 줄기 쪽에서 살살 꺾어 가며 거친 껍질을 조금 벗겨내고, 물로 씻어서 찜통에 넣어 쪄냈습니다. 진한 초록색이 된 호박잎을 꺼내 채반에 밭쳐 한 김 식힌 다음 초록빛 물기를 꾹 눌러 짜냈습니다. 멸치액젓에 대파와 마늘, 통깨, 고춧가루, 들기름을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고추를 찍어 먹을 된장에 들기름과 깨를 추가하니 군침이 돌았습니다. 호박잎 쌈과 풋고추를 먹고 나니 뭔가를 갈망하는 증세가 사라졌습니다.그제야 내가 왜 그렇게 달콤한 것이 먹고 싶었는지 알아챘습니다. 에너지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몇 칼로리를 먹었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원료를 먹었다는 뜻입니다. 500kcal를 먹었다고 우리 몸에서 그만큼의 에너지를 다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에너지가 되려면 소화 흡수 과정을 거쳐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서 포도당을 분해하는 해당 과정과 전자전달 과정을 거쳐야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삼인산)라는 에너지가 만들어집니다. ATP가 있어야 뇌에서부터 발가락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때 비타민과 무기질이 개입해 보조효소로 작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에너지가 없으니 사람이 쉽게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우리 몸은 필요한 영양소와 음식을 연결 지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뭔가 결핍되면 자꾸 먹고 싶어 집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다가 그 성분이 충족되면 그제야 식욕이 줄어듭니다. 그 음식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는 잘 몰라도 우리 몸은 그 필요를 채우고 나면 그 과정을 세포가 기억합니다. 프레드 프로벤자 교수는 오랜 세월 축적된 '세포의 기억력'으로 우리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포의 기억력은 대를 이어 유전되기도 하고 현재 식습관이 기록되어 업데이트되기도 합니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필요한데 엉뚱하게도 왜 아이스크림을 원했을까요? 그동안 그렇게 연결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입력오류'입니다. 가공식품이 슈퍼마켓 판매대를 점령한 이후 우리의 미각은 자연스러운 맛보다는 가공된 맛에 길들여졌습니다. 자연식품 대신 가공식품을 먹으면서 미량영양소 갈망 현상을 포만감으로 눌러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