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식사 023]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
그녀의 목구멍을 상상한다. 나는 그녀의 목구멍이 되어본다. 이빨 사이로 연거푸 물이 들어와도 금세 말라붙는 목구멍이다. 하기 싫은 말들이 깔깔한 틈을 비집어 나를 타고 넘어간다. 그녀는 하기 싫은 말들을 기어코 뱃속에서 쥐어짜 나를 비틀어 음성으로 만든다. 그래도 그녀는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일이 오니까.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해고 위기에 놓인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주어진 단 이틀을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준다. 회사는 산드라를 해고하는 대신 산드라를 제외한 동료 직원들에게 일천 불의 보너스를 약속했고, 직원들의 과반수가 이에 동의했다. 반장을 설득해 다음주 월요일에 재투표를 하기로 한 산드라에게 남은 시간은 이틀이다. 그 안에 16명의 직원들에게 일천 불의 보너스를 받는 대신 자신을 복직 시키는 쪽으로 투표해주길 부탁해야 한다.
영화 서장부터 그녀는 관객에게 설명할 시간도 없다는 듯 눈길 한번 맞추지 않는다. 동료 직원을 만나기도 전인데 긴장했는지 산드라는 안정제 한 알을 입에 넣고 수돗물로 목을 축여 넘긴다. 벌써부터 녹초가 된 산드라가 한낮에 길을 나선다. 나는 그녀의 목구멍이 된 것 같다. 비린 물과 알약이 살짝 생채기를 내고 간 타는 목구멍.
산드라를 괴롭게 하는 건 당장 이틀 후에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차라리 그 괴로움이 불가항력적인 미래에 달린 거라면 그녀도 지금쯤 체념하고 마지막 만찬을 즐기듯 아이들과 피자를 먹는 여유를 부렸을 텐데, 산드라는 자신의 결과가 자신의 과정에 달려 있는 상황이 괴롭다. 요컨대 산드라가 동료직원들을 한명씩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사정해야만 산드라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도 잔인한 공식 앞에 산드라는 나름대로 풀이법을 강구해 본다. 그녀는 동료 앞에 서서 마치 준비한 듯 말을 꺼낸다. 일천 불이 포기하기 어려운 돈이긴 하지. 하지만 그럼 나는 해고를 당해야 해. 물론 네가 날 해고한 것도 아니고, 단지 회사가 너에게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뿐이야. 하지만 월요일 재투표를 할 때 꼭 나를 선택해 줬으면 해. 사실상 이 말을 다 전하고 나면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동료들의 답변을 멍하니 듣고 있는 것이라, 그녀가 나름대로 쥐어짠 풀이법도 공식을 타파할 해답은 아니었나 보다.
영화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악스럽단 건 알겠다. 하지만 산드라의 부탁을 들은 동료들이 대답을 망설일 때마다 보는 이가 목이 타들어간다. 침을 삼킬 때마다 마른 목구멍이 깔짝깔짝 달라붙는다. 산드라의 청을 거절하는 동료들도 이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회사가 부당한 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천 불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의 인지와 이해를 넘어 작동하는 불가해한 세상. 그 한복판에 산드라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목구멍이 조여든다. 산드라는 마치 누군가 숨구멍이라도 막고 있는 듯 눈에 띄게 불안해진다. 그 불안의 발로는 단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강박보다, 더욱 부지런하고 성의를 보여야만 자신의 미래가 결정될 거라는 고약한 시스템에서 출발한다. 고통조차 달게 삼키지 않으면 오지 않을 내일, 오늘의 고통을 먹고 자라는 ‘내 일’이다.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한 그녀에게 사장은 계약직을 제안한다. 산드라는 일순 화색을 보였다가 그 계약직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은 결과임을 알고 사장의 제안을 거절한다. 회사를 빠져나온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결국 안됐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환하게 벌어지는 그녀의 입가를 보며 나는 그제야 그녀의 탁 트인 목구멍을 상상할 수 있었다. 시스템에서 벗어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결과를 책임지기 위해 고독한 뙤약볕에 투신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의 고통을 먹고 자란 내 일은 내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그녀는 이제 세상 누구보다 맑고 시원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내일이 두려워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럽다면 마음을 내려놓자. 어차피 내일은 온다.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맺는 대부분의 결과는 생각보다 우리의 노력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결과를 위해 그렇게 고통받지 않아도 내일은 온다는 사실을, 다르덴 형제는 부드럽고도 건조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