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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Dec 13. 2018

눈가가 떨리는 나, 이상한가요

소비의 일기 2. 아몬드

직장인 고질병에 대해 약간의 낭만이 있었다고 한다면 좀 우스워 보일까. 스물 여덟의 해를 넘기도록 취직을 하지 못해 방구석만 파고 있을 때 종종 연락하는 사람들은 대개 직장인이었다. 그들은 항상 어딘가 아팠다. 두통이 심하거나 위염을 달고 살거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달고 있거나. 대부분 직장인들이 겪는 만성적인 증상이라 인터넷에선 퇴사만 하면 낫는 병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직장 생활이 힘들지, 하면서도 나도 그런 병이라도 있는 직장인이었으면 좋겠다며 비뚤어진 생각을 했더랬다.

취직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여간 몸이 힘든 게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기본 여덟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있을 뿐인데 평범 수준이었던 체력이 가을 바람에 은행잎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단 음식만 주워먹다보니 살은 어마어마하게 쪘고, 소화력이 떨어져 변비가 잦거나 종종 배탈이 났다. 어느새 온 정신이 항문의 건강에 쏠린 ‘대장형 인간’이 되고 보니 한편으론 내가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거겠지, 하고 안심하다가도 일을 잘 못하는 현실을 내 건강으로 회피하려는가 싶었다.

언제부턴가 눈가가 떨렸다.
예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긴 한데, 이렇게 오래, 자주 눈가가 떨린 적은 없었다. 증상이 오래 가니 눈가가 떨리는 게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일까봐 걱정도 되고. 마치 고장난 기계가 달달달 몸을 떨듯이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는데, 기분 탓인지 그러고나면 눈이 더 피로해지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아, 이거 스트레스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거나 남들에게 “스트레스 때문인가봐요” 란 말을 들으면 내심 안심했다. 정확한 질병이 원인이면 덜컥 겁부터 났겠지만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이상하게 맘이 편한 건 자기착취에 길들여진 노동자의 습성 같은 건지.

눈가 떨림은 마그네슘 결핍 현상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지만 대관절 그 마그네슘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바나나에 마그네슘이 많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아 며칠 먹어봤는데 효과는 없었다. 급한대로 영양제를 사서 매일 먹어도 눈가 떨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트에서 구운 아몬드와 호두를 한 팩씩 사서 아침마다 먹게 됐다. 직장인이 된 뒤 매일 아침 블랙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출근을 하는 게 일상이 됐는데, 더불어 그 커피와 어울릴 만한 간단한 아침식사를 고르는 일도 소소한 취미가 된 참이었다. 딱히 눈가 떨림을 치료할 목적으로 산 것도 아닌데 의외로 해답은 이 아몬드와 호두가 갖고 있었을 줄이야.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공복에 유산균을 한 개 털어넣는다. (나는 ‘대장형 인간’이니까!) 씻고 나와 커피 포트에 남은 물을 확인하고 전원을 누른다. 물이 끓을 동안 젖은 머리를 닦고 화장품을 바른다. 기초 화장품이 흡수될 동안 커피잔을 꺼내 원두가루 세 스푼을 넣고 끓인 물을 담는다. 아몬드는 한 줌 쥐어서 열 개 정도. 호두는 한 알 분량만큼 꺼내 작은 종지에 담는다. 주간지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한다.

이런 생활을 근 한 달 간 했더니 눈가 떨림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한때는 그 떨리는 감각부터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하루에 세 번 이상은 눈가가 떨리곤 했는데. 이게 꼭 아몬드나 호두 때문은 아닐 수도 있다. 영양제를 꾸준히 먹은 덕분이거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됐거나 아니면 떨만큼 떨어서(?) 일 수도 있지만.....나는 아몬드와 호두 덕분이라고 믿기로 했다. 눈가가 떨리는 나, 이상하다면 아몬드를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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