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at my memory

Eat, My memory

No. 12 과일 솜땀과 닭고기

by 오M삼min

내가 묵은 숙소는 다른 곳보다 200밧 정도 저렴한 곳이었다. 에어컨은 없지만 한 낮이 아니면 딱히 필요하지 않을 만큼은 바람이 들었고,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창 밖의 나무는 두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무서웠다. 눈을 뜨면 무언가 저 길고 요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휘이 날릴 것만 같아 무서워서 오줌도 못 눴다. 저렴한만큼, 뜯겨나간 방충망 사이로는 도마뱀이 자유로이 오갔고 바람소리가 요란할 때마다 쯔르르르 하고 울었다. 저 녀석들이 필시 무언가를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인지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꼬리를 흔들어대며 그 '쯔르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머리가 간지럽다.

아무리 멋진 파충류라 할지라도 누구든 천장과 벽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 지금 머리 위에 저 녀석도 내 얼굴이나 몸통 위로 떨어질 수 있다. 녀석에게도 최악의 날이 되겠지만 몸집이 거대한 나 또한 놀라 자빠질 것이므로 불을 끄기 전에 녀석들에게 신신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종의 휴전협정인 샘이다.


눈을 뜨니 천장에 붙은 도마뱀이 없다. 내가 어제 배낭을 열어놨던가 닫아 놨던가?

열렸네 젠장.

가만히 있는 배낭을 발로 한번 툭 차 본다. 툭툭툭 연달아 공격해본다. 침대 위에다 배낭을 탈탈 털어 이 작은 스파이를 찾는다.

아, 다행히 녀석은 무사히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좀 씻고 나가서 뭐든 거하게 먹어야겠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 샴푸 거품을 채 씻지 못 대충 물기를 짜내고 위아래 잡히는 대로 주워 입은 후, 짜증을 얼굴에 푹 눌러쓰고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내려갔다.


-물이 안 나와요-

아저씨는 세탁기를 돌리실 참이었다.

-이렇게 잘 나오는데-

난 지금 분명히 안 나왔는데.

아저씨는 잠깐 그럴 때도 있는데 지금은 물이 나오니 마저 씻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좀 전에 눌러쓴 짜증이 샴푸 거품과 함께 눈을 찔렀다.

차가운 물이 한참 나오다 드디어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강 약 중강 약, 팟하고 물줄기가 등을 칠 때는 따갑기마저했다. 물이 다시 끊기기 전에 마저 씻어야 하므로 바디워시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차피 저녁에 또 씻을 거, 적당히. 그래, 냄새만 안 나면 되지. 아침을 먹으려 나가는데 아저씨가 모퉁이를 돌아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난간에 널어놓은 어제 입은 옷에 줄을 맞춘 듯 빨래집게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솜땀 먹으러 갈 거예요. 같이 가실래요?-

-아니, 난 됐어-

평소와 같은 톤으로 무뚝뚝하고 짧은 단답형 대답이 돌아왔다. 터덜터덜 혼자 길을 걸어 솜땀 집에 왔다.

구운 돼지고기와 과일 솜땀을 시키자 내 발치에 새로운 동행이 하나 둘 늘었다. 주인아줌마는 그게 미안한지 쫓아보기도 했으나 이내 다시 어물쩡 다가와 자리를 잡는 것이다.

턱시도 고양이에게 한 점, 얼룩 고양이에게 한 점, 누렁 강아지에게 한 점.

편식은 안 좋은 거라 기껏 생각해서 싱싱한 오이를 줬더니 역시나 먹질 않는다.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슬슬 잦아들고 이글이글 날이 끓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는 조금 많은 양이었고 솜땀은 딱 맞는 양이어서, 나는 그게 영 아쉬웠다. 솜땀을 두 그릇 주문해서 숙소 아저씨와 함께 먹고 찰밥을 두 봉지 시켰으면 적당히 짭조름하고 적당히 배부를 것이 딱 맞을 텐데.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산책하고 돌아오니 문 앞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수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역시 나는 아까 먹은 솜땀과 고기를 혼자 먹은 게 한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