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년기에 딱히 말썽을 피우는 아이는 아니었으나, 좀 유난스러운 아이였다. 오른쪽 무릎과 왼쪽 무릎을 번갈아가며 깨 먹었고, 어찌 좀 조용하다 싶으면 어디든 깨 먹고 온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앞 집 사는 동생의 장난감을 뺏어 울리고, 골목 막 다른 집, 파란 대문집 친구와는 싸우고 화해하고 소꿉놀이하면서 여보와 멍텅구리를 오갔다. 꼬집고 뜯고 때리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을까, 차라리 지금 그렇게 속 시원한 싸움을 벌일 깡다구가 있었으면 싶다.
할머니는 나의 유년기 시절 친한 친구였다. 나는 할머니가 어딜 가든 같이 다녔고 할머니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그런 나를 이뻐했다. 등이 굽어 한 손엔 지팡이를 나머지 손으론 내 어깨를 짚었다. 가면서 한 번씩은 꼭 쉬었다 걸어야 했다.
업어달라고 떼를 쓰진 않았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할머니는 사촌오빠를 제일 이뻐했다. 뭐 달렸다고, 쳇.
작은 아들 집에 다녀온 날이면 멀쩡한 노인네가 참 청승이었다. 우두커니 앉아 아무 소리 안 하다가 화초에 물만 줬다. 나 먹기도 아까워아껴먹느라 먹고 싶은걸 꾸욱 참아가며하루 한 개만 먹던 '벗겨먹는' 아이스크림을 내 드려도 안 드셨다. 막내아들이, 하나뿐인 손자가 금세 보고 싶어 그랬을까? 늙은이 생이별한 게 괜히 서글퍼서 그랬을까?
할머니는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하게 마실 땐 셋째 사위가 높은 사람한테 상으로 받았다고 딸이 서울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찻잔세트에다가 마시고, 날이 더워지면 미숫가루 타 먹던 양재기로 바꿨다. 얼음도 몇 개 동동 띄우고,
자꾸 달라고 했겠지, 나는.
-네 엄마한테는 비밀, 내 강아지. 코오피 먹었다고 하면 안 돼-
나는 비밀을 잘 지키는 아이였을까?
창 밖에 마당이 내다보이고, 옷 입기를 싫어해 내복 바람으로 앉아 할머니의 코오피를 뺏어먹던 그 시간을 아직 기억한다. 지금도 그 집에 산다면 나는 가끔씩 그 여운을 다시 느껴볼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유리병에 담긴 커피, 프리마, 설탕을 기억한다. 믹스커피란 게 생겼다는 걸 아시면 어떨까?
아이구나 세상에나 한 잔에 6천 원씩이나 하는 코오피에다 쪼꼬렛이며 크림이며 시럽이며 별 요상한 걸 다 올려 먹는 걸 막내 손녀가 할배네 구멍가게 드나들듯 자주 사 먹는 걸 아시면 경을 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