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M삼min Jun 08. 2024

Mal de mar

여기가 바다인지, 거기가 바다인지.

 내가 그해에 첫 번째로 여행을 떠난 곳은, 두 번째로 찾은 꼬 따오였다. 유월의 우기, 바닷가에 굵직한 빗줄기가 내리면 미얀마 선장의 배는 똑바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파도를 타고 출렁거렸다. 나는 그렇게 파도에 휩쓸리는 작은 배 위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뛰어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다이버였다. 해적이 된 것만 같았다. 모두가 선실에서 몸 사리며 이 구간을 지나기만 바랄 때 나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선실에서 적당히 버티며 해적놀이에 심취했다. 잭 스패로우 뺨치게 멋진 해적 이름을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바다 위에서도 바다 밑에서도, 우리는 깊은 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 멀리 따오라는 섬까지 바닷속에 잠기기 위해 떠나왔으니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고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바닷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비가 내리는 따오의 바다 위는 조금 추웠기 때문이다.

 장대비가 내리는 구간을 무사히 벗어나면 다시 어느 정도 견딜만한 바다에 이르렀다. 공기탱크를 지고 '첨벙' 입수하면 비로소 우리는 고요할 수 있었다. 장대비를 그대로 받아낸 바닷속은 잠시나마 따뜻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서서히 더 깊은 곳으로, 서서히 잠기면 비로소 편안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시야는 밝아졌다. 어두운 바닷속에서 두둥실 떠다니고 있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샤갈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귀한 물고기를 보는 것보다 발이 땅에 묶이지 않은 가벼움을 사랑했다. 어느 것도 나를 그렇게 두둥실 가볍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레귤레이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 숨소리와 편안한 물소리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악의 멜로디를 떠올렸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선곡이 달라지기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수면의 빛줄기가 바다 밑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함께 다이빙을 떠난 버디들과 장난을 치기도 하고 그들의 카메라 속에 담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육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바닷속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사랑한다고 느꼈다.

 수심 18미터 50분, 충분치 않은 시간에 수면 위로 올라올 때는 비가 그친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위에서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갈 시간을 조급하게 기다렸다. 아쉽기만 한 두 탱크가 끝나고 뭍으로 돌아오며 시작되었다.

 Mal de Mar, 배 멀미 혹은 육지 멀미.

 

 "괜찮아?"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

 "Mal de Mar! Descansa un poquito y toma mucha agua!" (뱃멀미야, 좀 쉬고 물 많이 마셔)

 다이브 사운드의 다이버들이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봄보나는 선착장과 아주 가까워 각자 자신의 다이빙 용품을 들고 걸어서 봄보나로 돌아왔다.

 오전 다이빙이 끝나고 점심 식사 후 다시 오후 다이빙을 나가기로 한 터라 아침에 미리 주문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봄보나 카페에 앉아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마셨다. 어째 배에서 내렸는데도 땅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좀 괜찮아?"

 "똑같아."

 봄보나의 다이버들이 말했다. 다시 바닷속에 들어가면 괜찮아진다고, 바다가 나를 사랑해서 뭍에 올라온 걸 질투하는 거라고.

 스스로가 꽤 멋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시키는 대로 많은 양의 물을 마셨고 라떼 한 잔도 다 비웠다.

 

  오후 다이빙을 위해 다시 장비를 챙겨 배에 승선했다. 아침에 심술궂게 내리던 비가 그쳐 바다도 한결 잠잠하다. 아침의 아쉬움을 기억하며 장비 꾸리기에 집중했다. 다이빙 조끼와 레귤레이터를 탱크에 연결하고 마스크도 정성스레 헹궈준다.

 "어떻게 입수할 거야?'

 "Un paso adelante."

 다시 뛰어든다. 다시 고요해지기 위해.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둘러싼 빙빙 도는 세상이 조용히 멈추었다. 다시 평온함에 잠식된다. 여기서 며칠 머물다 뭍으로 돌아가는 게 더 쉬울 것만 같았다.

18미터 45분, 다시 18미터 50분.

세 번째와 네 번째 다이빙이 끝나고 다시 육지올라왔을 나는 심하게 비틀거렸다. 아침에 장대비를 만나 심하게 꿀렁거리던 배에서 처럼 비틀거렸다. 전에 없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다리를 육지에 붙이고 살아가는 내가 이젠 바닷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처럼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같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렸다. 

 편의점에서 커다란 물병을 하나 사서 진정한 해적이라도 된 듯 잭 스패로우처럼 지그재그로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 600밧짜리 숙소는 방문 안과 밖에 크고 작은 도마뱀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방 안에 모기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돌벽에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도마뱀이 빙글빙글 돌았다.  

 적당히 몸에 묻은 소금기만 대충 헹궈내고 침대에 누웠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오늘 뭍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미한 정신이 침대 밑으로 다시 잠수한다.




 눈을 뜨니 이미 캄캄하다. 숙소 앞의 뷰는 칠흑같이 어둡고 무엇이라도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불빛 하나 없는 나무 숲이었는데, 그 숲에서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신기하게도 600밧짜리 방 안으로 그 바람은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목이 말라 침대에서 일어나 아까 사 온 편의점 봉투를 향해 걸음을 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시 일어나도 또 비틀, 돌벽에 다시 쿵.

 작은 600밧짜리 숙소 안에서 코 앞의 테이블까지도 갈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나는 장대비 속의 배 위에 있었다. 잔뜩 창피해진 해적이 한 마리의 모기가 되어 도마뱀 밥으로 사라진 것일까? 물병을 향해 비틀거리며 겨우 손가락으로  아챘다.

 숨도 쉬지 않고 열 모금은 마신 것 같다. 양치도 하지 않고 다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침대로 뒤꿈치를 들고 뛰어갔다.

 심각한 숙취가 머리를 한 대 때린 것 같은 어지러움이었다. 그렇게 요동치는 배 위에선 멀쩡하게 뛰어다녀놓고 왜 육지에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뭍인가, 바다인가?

 여기가 바다 위일까? 바닷 속일까?

 그렇게 정신을 잃듯이 깊이 자고 일어나니, 비도 오지 않는 맑은 새벽이 찾아왔다.

일어나자마자 또 숨도 쉬지 않고 물을 열 모금정도 마셨고 방문을 열고 테라스 앞에 나가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해질녘까지  12시간 동안 다시 잠을 다.

 깊은 바닷속에서 고요하게, 벽을 기어 다니는 바닷속의 생물들과 한 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성북동 파브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