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by 와리

교보문고 도장(구입 날짜는 12.10.19)이 찍혀 있는 주황색 표지, 책 표지에는 동그란 원 안에 빨간 반바지를 입은 회색 쥐와 빨간 리본을 맨 검은 토끼가 그려져 있다. 책등은 햇살이 들어오는 책장에 오래 둔 탓에 귤색으로 변해 있다. 페이퍼백으로 두툼하지만 손에 딱 들어오고 무겁지 않아 들고 다니기가 좋고, 안의 종이도 질이 좋아 팔락 팔락 넘기고 있으면 그야말로 ‘책’을 읽고 있다는 실감이 느껴진다. 표지만 하드커버고 속지가 얇은 책보다는 이런 책이 훨씬 마음에 든다. 아마도 이 책을 거듭해서 읽어온 데는 아마 책 자체의 형태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할 때 들고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한 혼탁을 헤쳐나가지 않고는 결코 보이지 않는 정경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 정경을 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설령 눈에 들어온다고 해도 그것을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말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글이 나올 리 없다. 왜냐하면 글 쓰는 일의 역할은(그것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원칙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전달하기보다는 총체적인 정경을 전달하는 데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그 ‘결론 없는 상황’을 확실하게 그와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이 ‘공유’된다는 든든한 실감이 거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매장마다 그와 함께 난처해하고 곤혹스러워한다. 이것이 실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어디선가 빌려온 것 같은 결론을 들이대며 호언장담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사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난처한 세상, 43-45쪽


어설프고 ‘어디선가 빌려온 것 같은’ 결론을 강요하지 않으며, 한 발 뒤로 물러나 구체적이면서도 세밀한 사실을 제시하고, 다양하면서도 이리저리 엇갈리는 입장과 의견이 이루어내는 혼탁의 총체적인 정경을 재미를 섞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글의 효율성이라는 게 있다면, 본질 자체를 알기 쉽게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혼탁한 정경은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채로 놔둔 채 그 총체적 정경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식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단순한 사실이라도 어떻게 해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리 복잡하고 미묘하고 세밀한 심경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전달이 될 때가 있다. 소통의 묘기, 혹은 묘미는 대상을 왜곡하거나 훼손하려 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된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지언정.)
그러고 보면, 이 <잡문집>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총체적인 정경을 여러 가지 잡다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근사한 재미를 섞어, 그야말로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1년
신초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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