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by 와리
솔직히 말해서 학창 시절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워낙 평온해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도 묘하게 아프다. 그 무위함, 어리석음, 평범함이 시간을 넘어 마음속 밑바닥에서 무디게 저려온다.
자의식 과잉인 주제에 콤플렉스 덩어리였고, 간신히 프라이버시를 손에 넣고도 외로움을 탔으며, 뭔가가 되고 싶어 죽겠는데 발을 내딛기는 무서웠다.
모든 것이 모순되고 삐걱거렸다.
그 애와 나, 21쪽

온다 리쿠는 말 그대로 독자의 정신을 빨아들이는 흡입력 있는 문장을 아주 잘 구사하는 작가다. 실제로 책의 내용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리 재미있을 리가 없는데 책을 읽을 당시에는 ‘빨리 다음 문장을 읽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라는 마음과 ‘너무 서둘러 읽다 보면 중요한 단어를 지나쳐 버릴지도 몰라’라는 마음이 합해져, 쫓기고 있지만 단어 하나라도 놓칠 수 없다는 비장함으로 능력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읽게 된다. 그리고 그 흡입력의 폭풍이 몰아친 후 책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는 어쩐지 나른하고 기분 좋은 마비감과 함께 영문 모를 성취감이 찾아온다. 게다가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책의 읽기 전과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데, 어디가 달라졌는지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또 매력이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무엇이 달라졌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이 문장을 잘 쓰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 어떤 것을 가져와도 설득력 있게 몰입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혀 ‘개연성 없는 소재’도 개의치 않고 마음껏 가져다 쓰고 있는 작가지만 이따금 작가(이자 창작자)로서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목요 조곡>과 더불어 이 책 또한 그런 이유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인데, 왜냐하면 내 안에 있던 그렇고 그런 것들, 부끄럽고 쑥스럽고 어쩐지 입 밖에 내기가 참으로 곤란해서 우물거리고 있던 것들을 똑같이 부끄럽고 쑥스러워하며, 하지만 실은 여기 있긴 있어라는 태도로 슬쩍 내놓기 때문이다. 아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나의 이 소심함과 쓸데없는 진지함과 자의식 과잉과 생각의 모자람과 원인 모를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치기 어리고 되지도 않는 정의감 같은 것들, 전부 다 온다 리쿠한테 괜찮다고 나도 그랬다는 인정을 받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범하고 쿨하지 못한 탓에 이리저리 휘둘린 날에는 이 책을 슬쩍 펴보고 싶어진다. 나는 그냥 나로 있어도 괜찮아, 내가 나라서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브라더 선, 시스터 문>
Kawade Shobo Shinsha, 2009년
문학동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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