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겠다. 맞다. 나한테는 자기계발서를 무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는 일의 특성상 오히려 더 기회가 많았다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자주 접했기 때문이었는지, 혹은 운이 나쁘게도 옥석 중에 돌멩이 같은 책만 접했기 때문인지 그 자기계발서 특유의 독선적인 어조를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마치 종교적 간증처럼 느껴졌다. 종교적 간증 또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중 하나인데,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무조건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함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한테는 그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원칙, 하나의 결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란 곧 성공이라는 절대적인 가정 하에 논리를 펼치는 자기 계발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껄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저 오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젊은이 특유의 오만함으로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은 누가 일일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길을 찾는 방법 같은 것은 이 넓은 지식의 바다를 헤엄치며 내가 혼자 찾아내겠다, 누가 헤엄치는 방법 같은 것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성공과는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 길을 안내해 주기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혼자 길을 찾아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혼자 찾아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주위의 어떤 인물들과 책과 이야기와 환경들에 영향을 받아 걷기는 걷되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도달한 곳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너무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애써 귀를 닫았던 것은 아닐까. 쉽게 흔들려 버려 내가 알지 못하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길로 나도 모르게 나아가게 되는 일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오만함을 앞세우고 고집을 부렸던 것은 나 자신의 약함을 가리기 위한 방패가 아니었을까.
지금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들게 된 것은 이제 나라는 중심이 흔들린다는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자기 성찰이라고 하는 행복의 도구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즉석의 방법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자신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말부터 듣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깊이 지켜보고 스스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조언을 애써 물리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크게 흔들리고, 길을 벗어나 멀리 가 보는 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길을 찾는 가장 빠른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겨우 이제야, 오만함을 내려놓고 두려움을 떨쳐낸 지금에서야, 자기계발서라는 기운 넘치고 다정하고 친절하며 가끔은 독선적인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