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열대우림회사를 떠나 진짜 발리 열대우림에 왔네?
회사에 장기 휴가를 낸 지 어느덧 세 달이 지났다. 그중 발리에서 보낸 시간은 50일 정도이다. 이 시간 동안 종종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어쩌다 갑자기 그렇게 원하던 그 회사를, 이 나이에 뛰쳐나왔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뛰쳐나와 발리로 향했던 그 당시의 기억을 되돌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답을 못 찾는다 하더라도... 며칠 전 회사 이메일을 확인하며 역류성 식도염처럼 훅 치고 올라왔던 그 쓰디쓴 그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혹은 치열하게 쌓아온 커리어에 비상등을 켜고 멈춰 선 뒤 홀로 지구 반대편 발리까지 와야만 했던 그 절박한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시애틀에서 발리로 오늘 길은 쉽지 않다. 직항이 없어 한국까지 11시간 정도 날아간 후, 식은 땀나는 짧은 트랜스퍼를 간신히 통과하면 (아무리 월드베스트 인천공항이라도 한 시간 반은 여유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다시 7시간 정도의 비행을 해야 한다. 그렇게 도가니가 사라질 것 같은 비행을 마치고 발리 공항에 도착하면 천만 관광객과 수기로 접수하는 비자 절차를 통과해야 하고, 짐을 찾아 나오면 새벽 한시쯤 된다. Klook으로 예약한 택시 기사를 만나 좁은 길 사이를 스쿠터들이 5센티 남기고 추월하는 마리오카트 체험판을 한 시간 반 정도 경험하며 습기와 더위가 가득한 우붓으로 도착하면 새벽 3시쯤 된다. 그쯤 되면 24시간을 꼬박 밖에서 지낸 셈. 난 누구고 여긴 어디고 몇 시인지 모든 것이 뿌연 안갯속이다.
그렇게 땀이 줄줄 흐르고 모든 관절과 내장기관이 오열하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시원한 시애틀 오피스에 앉아서 이메일을 쓰고, 부서원들의 엑셀과 문서를 검토하고, 이 회사의 영혼과도 같은 6 pager를 리뷰하며 '의미 있는 value added' (혹은 나의 자아/생존을 위해서 소위 '똑똑해 보이는') 코멘트를 리얼 타임으로 라이브 링크에 서면으로 남기고 그렇게 문서 리뷰가 끝나면 이루어지는 토론시간 동안 head of finance에 걸맞은 '리더십 아우라 넘치는' 발언을 남기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고, 미팅이 없는 시간에는 인력관리를 하느라 사람을 평가하고, 자르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또 사람을 찾아보고 인터뷰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홀로 이역만리에서 도가니가 없어지고 다리는 퉁퉁 부은 채 맞이했던 그 새벽에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10대 이후 30년 동안 나의 모든 것을 걸어 쌓아 온 나의 이력, 커리어. 그 최전선에 서있는 시애틀 열대우림회사를 훌쩍 떠나 발리의 진짜 열대우림에 왔던 그 새벽의 공기는 여기까지 나를 이끈 과정과 내려야 했던 결정의 무게와는 달리 이상하리 만큼 가볍고, 평온했다.
(서론이 길어져서... 실제로 뛰쳐나오던 그날의 기억은 part 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