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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Jan 23. 2024

무모함 또는 과감함

"연예인들은 놀면서 돈을 버네." 


1박 2일, 무한도전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이상적인 만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무식한 욕심이 말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확고한 욕망으로 이어졌고 그 뜻과 결이 같은 학원강사 일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고 있었다. 나는 즐거워야만 했다.


우리 어머니는 매사에 걱정이 태산이시다. 학원강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충격적인 모습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곡소리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우셨다. 부모의 당연한 마음이겠지만 어머니의 아들은 반드시 남부끄럽지 않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만 했고 어머니 눈에 학원강사는 그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남들은 평생 찾고 죽기도 한다는데 드디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으니까. 어머니와는 오랫동안 냉랭한 사이로 지냈다. 

그즈음 대학시절부터 4년 간 교제했던 여자친구가 노량진에서의 오랜 수험생활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7급 검찰직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나 진심을 다해 축하해 줬다. 지난날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었지만 그날은 아주 화기애애했다. 잠시나마.

나도 근황이 있기에, 나를 취업준비 중으로 알고 있던 여자친구에게 약 3개월째 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자친구의 얼굴이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했다. 어.. 엄마...???

맞다. 엄마가 빙의했다. 여자친구는 카페 안에서 짐승처럼 포효했다.

"야! 내가 동네 학원쌤이랑 결혼하려고 이 고생해서 7급 공무원됐냐? 지금 이게 말이 되냐?"

나는 깜짝 놀라서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나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는데..."

"뭐? 야! 헤어져!!!"

한 때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았던 사랑보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더 소중해졌다. 4년의 연애는 그날로 끝났다. 


어느 날 방송프로그램에 선물처럼 등장한 김창옥 강사님. 그의 강연을 접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야~ 말 잘한다, 웃기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라며 열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또 하나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였다.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에서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 중 하나는 방청객들의 표정이었다.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반면 학원강사의 방청객들은 수동적이다. 웃기면 웃지만 주로 무표정이다. 항상 피곤하다. 내 이야기를 들으어 오는 게 아니라 수학을 배우러 온다.

'김창옥 강사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좋게 말해 나는 실행을 잘 한다. 행동이 빠르다. 어리석다는 말도 많이 들어봤다. 강사가 되려면 먼저 스피치학원에 다녀야만 되는 줄 알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스피치학원을 찾아가 큰 돈을 들여 등록했다. 왕복 6시간 버스를 타고 주말마다 열심히 스피치라는 것을 배우러 다녔다. 마음이 붕붕 떴다. 학원강사를 시작할 때의 설레는 기분과 흡사했다.

세무사 친구와 만나 스피치란 무엇인지 신나게 아는 척을 했다. 

"김창옥 강사 알지? 나도 그런 강사 해보려고. 어때? 잘 할 것 같아?"

친구는 술잔을 깰듯이 내려놓고 냅다 쏘아붙였다.

"야, 너 또 시작이냐? 직업을 또 바꾸겠다고? 뭐 강연? 니가 사람들한테 무슨 말 할건데, 뭐 죽다 살아난 구구절절한 사연이라도 있어? 그리고 그거 학벌이 되어야 하는 거 아냐? 와... 너 혹시 니 학벌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때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도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랐기 때문에.

불쾌하진 않았다. 동네 바보가 뻥 한 모습이랄까. 반박대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데 뭐'


뒤돌아보면 지금껏 내가 하고 싶다는 일들은 모두 주변의 강한 반대와 마주했다.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도 어쩌다 발작이 한 번씩 일어나는 것처럼 외로웠다. 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물론 반대세력에 공감한다. 나도 내 제자들이 꾸는 꿈을 모두 응원하진 않는다. 도전이라는 단어는 분명 양면성이 있다. 무모함과 과감함 사이의 외줄타기. 어쨌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실패하면 쿠데타, 성공하면 혁명인 것처럼 꿈은 실패하면 무모함, 해내면 과감함이다. 

해내고 나니 당당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오는 즐거움 뿐아니라 말로 다 표현 못할 성취감과 함께한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보면 공무원 시험 준비 언제 하냐고 물으신다. 아들이 행복하다고 해도 행복한 척 하지말라고 하신다. 어머니 깨톡 프로필 사진에는 누나사진은 있지만 내 사진은 없다. 섭섭하지 않다. 얼른 더 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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