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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Jan 11. 2024

자살 각(1)

빼빼로데이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뭔가 기념일 같고 노는 날 같은 기분이 든다.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 할 빼빼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빼빼로데이는 감옥과 지옥의 사이 어디쯤 된다.


2021년 11월 11일, 코인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렸다. 스팸처럼 연락한 뭐시기 팀장이라는 사람은 주가조작이 가능한 우리 세력을 믿고 따라오면 원금을 다섯배로 불려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난 원래 그런 말에 고민없이 코웃음부터 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뭐시기 팀장은 1분 동안 주가를 10% 내렸다가 올릴테니 구경하라고 했고 나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뇌 회로는 긍정적인 쪽으로 흘렀고 나는 이 세력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거라고 믿었다. 굉장히 신이 났었다.

전재산만 날리면 그나마 괜찮다. 주식도 안 하던 놈이 갑자기 단단히 홀려서는 주머니에 있는 돈 다 털어넣고 카드 현금서비스에 더해 신용대출 해서 넣고 친구들에게 빌려서까지 넣었다. 

990원에 샀던 코인은 정확히 3년 전 빼빼로데이날 200원으로 떨어졌다. 기가막힌 작전주라고 했으니 날아오르려는 과정 중 하나겠지 하고 침착하게 지켜봤다. 200원 전후로 꿈틀거리던 내 코인은 사흘 뒤 50원이 되었다. 한달 간 작전을 주도하던 우리의 뭐시기 팀장님은 수백명의 피해자가 모여있는 단톡방에 조롱 섞인 인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단톡방은 아수라장이 됐다.


학원 월급과 과외수입으로 적당히 여유있게 지내고 있던 내 일상은 단번에 엉망이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한 달만에 원금의 다섯배로 불어났어야 할 돈이 그대로 빚으로 변했다. 제태크를 하려 준비한 총알이 되려 나를 겨눈 것이다. 대출원금에 이자, 카드대금, 친구들 돈. 매 월 갚아 나가야 할 돈을 계산해봤다. 지금의 수입으로는 택도 없었다. 과외를 늘려볼까 했지만 당장 전단지 게시할 돈도 없었다. 새벽알바를 구해보려 했으나 이런저런 문제로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감이 안 왔다. 금융기관의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신용점수가 하락한다는 건 알겠는데 계속해서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감옥에 가는 건가. 무서웠다.

어찌어찌 해가 바뀌고 세 달 째,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에게 어렵사리 돈을 빌렸다. 이번 달은 이 돈으로 해결하고... 다음 달은 또 어쩌지. 한없이 막막했다.


코인사기를 당한지 4개월 경과.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했던가. 아는 형이 신발장사를 소개해 주셨다. 길거리에 노인들 신는 신발 쫙 깔아놓고 파는 리얼 장사. 그 형은 한 달 순수익 1500만원까지도 달성해봤다고 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람도 아니다. 속사정을 아는 몇몇에게 의견을 묻자 하나같이 펄쩍펄쩍 뛰었다. 안 어울린다고. 곧 죽겠는데 안 어울리는 게 어디있나. 나는 또다시 모험을 해야 했다.

신발을 싣고 다닐 트럭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장사를 소개해 준 형이 타던 트럭을 나에게 외상으로 팔아주셨다. 큰 돈을 벌 기회다. 과감해져야 한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과외수업도 다 정리했다. 장사 준비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올뺴미 생활패턴 8년만에 강제로 아침형 인간이 됐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트럭을 끌고 나가 창고에 도착, 부족한 신발을 채워 싣고 그날 그날 잘 팔릴만한 희망의 장소를 찾아 떠났다.

재미있었다. 사람 상대할 줄 알기에 어려움이 없었고 형이 말 해준 것처럼 신발은 잘 팔렸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들은 젊은 아들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회사를 다녀야지 왜 이런 고생을 하냐며 점심식사를 차려 갖다주시기도 했고 열심히 산다고 용돈을 주신 분도 있었다. 희망이 무럭무럭 생겼다. 나도 월 천씩 벌면 빚 금방 갚겠구나. 나는 이 장사로 2주 만에 400을 벌었다.


그리고 2주가 넘어가던 어느날 항상 하던 축구를 하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목발 신세가 됐다. 내 장사는 그대로 끝이 났다.


다친 발이 너무 아파 한동안 집에만 있었다. 나가서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아주 짧은 기간동안 보였던 희망은 온데간데 없었다. 과외라도 남겨뒀다면 목발짚고 가서 수업은 할 수 있는데, 나에게 남은 돈벌이는 손에 닿지 않는 트럭과 신발뿐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연달아 악재가 겹치는 거지? 내가 잘못 살았나? 이제 당장 돈을 어떻게 벌지?

처음 느껴보는 좌절감에 의외로 생각정리는 빨랐다. 죽어야겠다. 다리만 나으면 죽으러 가야겠다. 주식투자 실패한 사람들 한강가서 많이들 자살한다고 하니 나도 한강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살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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