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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Jul 21. 2022

우유, 자동차, 사랑

처음에는 희고 맛있게 생긴 우유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상해서 못 먹게 되듯이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기간이 길어야 3년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6개월, 짧게는 3개월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안타깝게도 활활 타는 사랑을 영원히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내 첫 차는 당시 갖고 있던 전 재산보다 비싼 150만 원을 들여 중고로 샀던 카렌X였다. 태어난 이래로 직접 사본 것 중 가장 고가의 물건이었기에 단번에 나의 보물 1호가 되었다. 누렇게 바랜 색깔 탓에 친구들은 똥차라고 놀렸지만 나는 그 차에게 ‘누렁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차를 탈 때마다 “누렁아 안뇽?” 하고 인사를 건넸고 내릴 때마다 잊지 않고 달리느라 수고했다며 노랑이의 먼지 묻은 엉덩이를 토닥여줬다.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에어컨도 따뜻했지만.


그러나 약 1년 후, 월수입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레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는 노랑이 몸값의 20배나 되는 차를 구입했고 매일 손세차를 하는 등 그 하양이 차에 푹 빠져버렸다. 

"우와, 누렁이인지 누렁니인지 저 똥차를 내가 어떻게 타고 다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누렁이는 한동안 데려간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미련없이 폐차시켰다.  이별은 언제나 그렇듯 갑자기 찾아온다.     


썸을 타는 기간을 포함해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 행복하다.  연애 초기에는 뇌에서 엔도르핀,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호르몬이 활발하게 생성되면서 이 덕분에 상대방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마저도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핑크 렌즈 효과라고 부른다.  편견이라는 추상적 단어를 대변하는 물질적 단어 색안경을 핑크색으로 골라 쓴 셈이다.  만화나 이모티콘 캐릭터의 눈이 핑크색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슬픈 현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서 말했던 호르몬 작용이 점점 감소하면서 우리는 사랑이 식어가는 나 또는 상대방을 경험한다.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정하기 싫은 잔인한 순리다. 먼저 변한 사람보다 그것을 보게 되는 입장에 선 사람이 100배는 더 아프다.  가슴이 아려오는 배신감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행복하기만 했던 추억들은 다 연기였냐며, 귀에 눈처럼 녹아들던 약속들은 다 사기였냐며 논리 정연하게 따지면 어떻게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헛된 기대와는 달리 한 번 변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가속도가 붙기 마련이다.  그 사람을 원망하면 뭐하나.  스스로 변하고 싶어서 변한다기보다는 뇌와 호르몬이 시키는 일이니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원망할 일도 아니다.  뭐 원망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벌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자동차를 정기적으로 검사받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수시로 점검이 필요하다. 너무 멀리 와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오래 타서 질리거나 고장 난 차를 꼭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냥 타나? 그래도 어느 정도 고쳐서 타야 한다.  개선해보려는 노력. 빗물이 새는 차 천장 밑에 세숫대야도 놓고 하다 못해 시멘트라도 발라보거나 인터넷 지식인에 조언을 구하는 노력들. 

할 건 많다. 가능한 선에서 둘 만의 시간을 늘린다든지, 함께하는 취미생활을 만들어볼 수 있다. 또한 무심코 건네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조심하면 적어도 사소한 싸움거리는 줄일 수 있다.


언젠간 변하는 우유, 우리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그냥 상해버릴 수도, 맛있는 요거트로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점. 우리가 하는 사랑과 똑같다는 걸 이미 잘 알고들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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