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이 황금이 되는 조직
"팀장님, 이 건 관련해서 의견 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지금 바빠서. 나중에 얘기하자."
그리고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김 대리는 프로젝트의 중요한 기로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또 하루를 보낸다. 내일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까 봐 다시 물어보기도 망설여진다. 결국 자의적으로 판단해 진행하다가 나중에 "왜 멋대로 했어?"라는 질책을 듣는다.
이런 악순환,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나중에 병": 한국 기업의 고질병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취업포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3%가 "상사의 '나중에'는 사실상 '안 한다'는 뜻"이라고 응답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로 인한 파급효과다.
의사결정 지연: 평균 5.3일
재작업 발생률: 45% 증가
직원 동기부여: 62% 감소
프로젝트 지연: 평균 2.7주
한 중견기업의 실화다. 마케팅팀에서 신규 캠페인을 기획했다. 팀장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나중에 보고 얘기해줄게"라는 답변만 반복됐다. 3주가 지나고 경쟁사가 비슷한 캠페인을 먼저 시작했다. 결국 6개월간 준비한 프로젝트는 폐기됐고, 팀원 2명이 퇴사했다.
왜 상사들은 "나중에"를 남발할까?
상사들이 "나중에"를 말하는 진짜 이유
첫째, 우선순위 혼란이다. 모든 것이 급하다 보니 정작 무엇이 진짜 급한지 판단하지 못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중간관리자의 87%가 "너무 많은 의사결정 요구에 압도당한다"고 응답했다.
둘째, 결정 공포증이다. 틀릴까 봐, 책임져야 할까 봐 미룬다. 특히 한국의 위계적 조직문화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셋째, 시간 관리 실패다. 정말로 바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시간 사용 분석을 해보면 회의, 보고서 검토, 이메일 확인 등 루틴한 업무가 대부분이고, 정작 의사결정에 쓰는 시간은 하루 평균 23분에 불과하다.
넷째, 권위 의식이다. "내가 시간 낼 때까지 기다려"라는 무의식적 권력 행사다. 이는 특히 나이 든 상사일수록 심하다.
아마존의 "5분 규칙": 즉시 결정의 힘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CEO 시절 독특한 의사결정 원칙을 만들었다. "5분 안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결정한다."
그의 판단 기준은 명확했다: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인가? → Yes면 즉시 결정
추가 정보가 결정을 바꿀까? → No면 즉시 결정
지연 비용이 큰가? → Yes면 즉시 결정
이 원칙에 따르면 대부분의 일상적 의사결정은 즉시 가능하다. 실제로 아마존의 의사결정 속도는 경쟁사 대비 3배 빠르다. 이것이 아마존이 20년 만에 세계 최대 기업이 된 비결 중 하나다.
베조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결정은 70%의 정보만 있어도 충분하다. 90%를 기다리다가는 이미 늦다. 빠른 결정과 수정이 완벽한 결정보다 낫다."
STOP 화법: 즉시 결정을 이끌어내는 대화 기술
"나중에"를 "지금"으로 바꾸려면 전략적 대화법이 필요하다. STOP 화법을 활용해보자.
S - Specific (구체적으로) 막연한 요청은 미루기 쉽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한다. "팀장님, 5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딱 3가지만 결정해주시면 됩니다."
T - Time-bound (시간 제한) 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미리 제시한다. "2분이면 설명 가능하고, A안 B안 중 방향만 정해주시면 됩니다."
O - Outcome (결과 제시) 즉시 결정했을 때의 이점을 보여준다. "오늘 결정하시면 금요일까지 완성 가능합니다. 다음 주면 월말 마감에 걸립니다."
P - Plan B (대안 제시) 상사가 정말 바쁠 경우를 대비한 대안을 준비한다. "지금 어려우시면 오후 3시까지 메일로 의견 주셔도 됩니다."
실전 예시를 보자.
잘못된 접근: "팀장님, 시간 되실 때 한번 봐주세요..."
STOP 화법: "팀장님, 2분이면 됩니다. A안 B안 중 방향만 정해주시면 오늘 중으로 초안 나옵니다. 지금 어려우시면 오후 3시까지 메일로 의견 주세요."
차이가 느껴지는가? 첫 번째는 상사에게 부담을 주지만, 두 번째는 쉬운 선택지를 제공한다.
토스의 "Sync or Swim" 문화
토스는 "나중에"라는 단어 자체를 없앴다. 모든 미팅과 의사결정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Sync 미팅 (동기화)
즉시 결정 가능한 사안
15분 이내 스탠딩 미팅
그 자리에서 결론
Swim 미팅 (심화)
깊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
사전 자료 공유 필수
정식 회의실 예약
"나중에"는 없다. Sync 아니면 Swim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토스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한 토스 매니저는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어요. 모든 걸 즉시 결정해야 한다니. 하지만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편해요. '나중에' 때문에 머릿속에 쌓아두는 일이 없으니까요."
상사 심리 활용법: 손실 회피 본능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2배 더 민감하다. 이를 활용하면 상사의 즉시 결정을 유도할 수 있다.
"나중에 하면 ○○를 잃습니다" 프레이밍
"지금 결정 안 하시면 → 경쟁사가 먼저 출시합니다"
"오늘 피드백 안 주시면 → 주말 작업이 불가피합니다"
"이번 주 확정 안 하면 → 다음 분기로 미뤄집니다"
"지금 승인 안 하시면 → 할인 혜택을 놓칩니다"
넷플릭스는 이를 극단적으로 활용한다. 모든 보고서 첫 줄에 이렇게 쓴다: "이 결정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예상 손실: $○○○"
숫자로 보여주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상사 유형별 맞춤 전략
모든 상사가 같은 것은 아니다. 유형을 파악하고 맞춤 전략을 써야 한다.
1. 분석형 상사: 데이터로 압박
"수치로 보면 A안이 ROI 35% 높습니다. 상세 분석은 첨부했고, 핵심만 2분에 브리핑하겠습니다."
2. 관계형 상사: 팀 영향 강조
"팀원들이 방향만 정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3. 주도형 상사: 경쟁 자극
"B사는 벌써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4. 안정형 상사: 리스크 최소화
"단계별로 진행하며 중간 점검하겠습니다. 문제 생기면 즉시 중단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성공으로: LG이노텍의 "현장 결재"
2021년, LG이노텍은 애플 납품 기회를 놓칠 뻔했다. 품질 이슈 대응이 "검토 후 연락"으로 3일 지연되는 사이, 경쟁사가 먼저 제안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사건 후 LG이노텍은 대대적 개혁을 단행했다.
"현장 결재 시스템"
생산 현장에 임원 상주
모든 결재는 현장에서 즉시
"나중에"라고 3번 하면 경고
결정 지연으로 인한 손실 책임 명확화
결과는 극적이었다. 의사결정 속도 70% 개선, 불량률 50% 감소, 그리고 애플의 메인 벤더로 선정됐다.
디지털 도구 활용: "나중에" 방지 시스템
기술을 활용하면 "나중에"를 시스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슬랙/팀즈 활용
리마인더 자동 설정: "2시간 후 다시 알림"
스레드 고정: 결정 필요 사항 상단 고정
투표 기능: "A안 B안 중 투표해주세요"
타임아웃 설정: 24시간 내 미응답시 자동 에스컬레이션
캘린더 해킹
"결정 시간" 미리 블로킹
15분 단위 짧은 미팅 강제
상사 캘린더에 "○○ 건 결정" 직접 등록
반복 알림으로 결정 압박
문화를 바꾼 기업: 쿠팡의 "Now or Never"
쿠팡 김범석 대표의 경영 철학은 명확하다. "속도가 완벽을 이긴다."
쿠팡의 의사결정 4원칙
70% 정보면 충분하다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은 즉시
"나중에"는 "No"와 같다
잘못된 빠른 결정 > 늦은 완벽한 결정
이 원칙이 만든 결과:
로켓배송: 경쟁사보다 2년 빨리 시작
쿠팡이츠: 기획에서 출시까지 단 6개월
시장 점유율: 5년 만에 업계 1위
한 쿠팡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무모해 보였어요. 하지만 빨리 시도하고 빨리 수정하니까 오히려 리스크가 줄더라고요. '나중에'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게 진짜 리스크죠."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7가지 전략
마감 딜레마 만들기 "금요일까지인데 목요일에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하루 여유가 있으면 퀄리티가 확 올라갑니다."
선택지 압축하기 "원래 7개 옵션이었는데 3개로 줄였습니다. A, B, C 중에 선택만 해주세요."
책임 전가하기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일단 진행해보겠습니다."
단계별 접근하기 "전체 승인이 부담스러우시면 1단계만 먼저 승인해주세요."
벤치마킹 활용하기 "○○팀은 이미 이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늦으면 안 됩니다."
성과 가시화하기 "지난번 즉시 결정으로 프로젝트 기간 30% 단축했잖아요. 이번도 가능합니다."
타이밍 포착하기 회의 직후, 좋은 소식 후, 커피 마시는 시간 등 상사의 기분이 좋을 때 접근한다.
조직 문화 바꾸기: 작은 승리의 축적
한 제조업체 과장의 이야기다. 그는 '즉시 결정 캠페인'을 조용히 시작했다.
"처음엔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거 제가 결정하고 진행하겠습니다. 문제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방식으로요. 그다음엔 작은 것부터 상사 결정을 받아냈죠. '예산 10만 원 이하는 제 선에서 결정해도 될까요?'"
6개월 후, 그의 팀은 부서에서 가장 빠른 의사결정 속도를 자랑했다. 다른 팀들이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전사적으로 '즉시 결정 문화'가 확산됐다.
"핵심은 작은 성공을 쌓는 거예요. 빠른 결정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걸 계속 보여주는 거죠. 그러면 상사도 '나중에' 하기가 부담스러워져요."
지금이 바로 그 '나중'이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나무를 심기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두 번째로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의사결정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지금이 바로 그 '나중'이다.
다음에 상사가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면, 미소 지으며
"팀장님, 2분이면 됩니다. 지금 결정하시면 팀 전체가 한 발 앞서갈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