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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마 밑 Oct 10. 2016

여는 글

글쓰기를 시작하며

글 쓰듯이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완성도를 생각하며 글을 쓰듯이, 표현 하나에도 섬세하게 신경 쓰며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하는 것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화하듯이 부드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을 몇 본 적이 있다. 그들의 말은 곧 글이 됐다. 그들의 글은 말로 옮겨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심한 뒤 우선 말을 줄였다. 허투루 내뱉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말을 줄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이 많아지니 말을 잃어버렸다. 어떤 말에도 확신이 없었다.


말을 잃어버린 내게 남은 표현수단은 글쓰기뿐이다. 물론 말할 때와 같이 글을 쓸 때도 생각이 많고 확신이 없다. 그러나 뱉으면 휘발되는 말과 달리 글은 기록으로서 남는다. 나는 내가 토해낸 언어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칠 수 없음'이 내 글을 섬세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글을 쓰면 그제야 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하는 데 있어 더는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쓴 글을 그저 읽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고 싶은 표현을 모두 글 안에 담을 것이므로. 그때쯤 되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 처마 밑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처마 밑에선 난생처음 보는 사람과도 따듯한 동질감을 느꼈다. '처마 밑'이란 공간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나는 이곳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들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그것들은 주로 책이나 영화가 될 것이다. 내 글들이 모인 이곳이 비 오는 날 처마 밑과 같은 따듯함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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