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을 보고
*이 글은 영화 <버닝>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존재한다고 확인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볼 수도 있고 만져볼 수도 있다. 나 자신의 감각조차 믿지 못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태우는 수밖에. 영화 <버닝>은 믿지 못하는 인간이 믿음을 찾아 태우는 이야기다. 물성을 가진 어떤 것은 타기 마련이니, 사라지게 만들면서 존재를 확인하는 게 '버닝'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모호하다. 감정은 요란하지 않다. 다 보고나면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 건지 쉽게 감이 잡히질 않는다. 확실한 모호함만이 가득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순간은 비닐하우스가 타오를 때다. 비닐하우스의 물성이란 투명한듯 불투명하며 서있는듯 쓰러질 것 같고 그 무엇보다 사라질듯 썩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런 비닐하우스가 활활 타오를 때 비닐하우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존재를 활짝 드러낸다.
종수(유아인 분)가 찾는 건 해미(전종서 분)고, 그 단서는 벤(스티븐 연 분)이다. 해미를 찾기 위해 벤을 찾을 수밖에 없는 종수의 입장을 비유해보자면 의미(해미)를 찾기 위해 신(벤)에게 묻는 인간(정수)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벤을 끝내 태우고 알몸으로 돌아서는 종수는 결국 의미에 끝에 기거하는 무의미를 발견하고 무력함을 느끼는 인간 처지와 닮은듯 하다. '결국엔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서사를 담은 이 영화에는 표현만 있을뿐 메시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을 잉태한 인간은 괴롭다. 답을 얻을 수 없다면 질문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그 방식을 태우는 걸로 표현한다. 타는 순간만큼은 질문의 존재가 절절하게 느껴지겠지만, 사라지고 나면 있던 것조차 잊게 될 것이다. 이로써 의미를 찾는 일은 요원해졌지만, 질문과 의미가 사라져도 삶은 남는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영화는 오랫동안 설명한다.
(20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