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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마 밑 Jan 04. 2019

일하는 삶, 사는 일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일이 아닌지 구별하기 힘든 요즘에는 멍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렇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아는 나이가 됐는데도 일은 너무 힘들고 어렵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일이 전부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이 전부라는 건 삶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일 자체가 삶이므로 오히려 일과 삶을 구별하는 사람보다 삶은 보다 분명하다. 메러디스(엘런 폼페오 분)는 쉬는날에도 병원에서 수술을 참관한다. 집에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지만 더이상 할 일이 없단다. 크리스티나(샌드라 오 분)도 마찬가지. 쉬는날 기어코 심장이식 현장에 따라간다.


드라마는 '이렇게 일하면서 과연 행복할까'란 질문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시즌1에서 메러디스는 "나는 이곳(외과의로서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사랑한다"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 앞에선 행복하느냐란 질문을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한다는데 더 무슨 말을 하랴. 그러니 일터에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친구와 연인을 만나는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은 호소력이 있다.

불행히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밥벌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 역시 좋아하는 면은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자주 멍해지는 이유다. 사랑이 아닌 것에 내 삶을 쏟아붓고 있으니 말이다. 사는 게 일처럼 느껴지는 불행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건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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